영예문학교회(이영지poetclasschurch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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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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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지 목사가 그의 논문을 학위받은 다음 이제 숙제로 남겨졌던
반드시 더 연구되어야 할 물과 사랑의 불가분의 관계인 2회의 리듬1)을 더 찾는 작업이다. 물이 다름 아닌 하나님이 그의 손으로 하시는 많은 일의 뜻이다. 가장 소중한 결과는 히브리어가 한국어와 유사한 점이 많은 너무 많다. 우리 귀에 아주 익숙한 특징을 히브리어는 가지고 있어서 ‘히브리어는 한국어의 어원이다’라는 말까지 감히 말할 수 있을 만큼 다양하게 제시된다. 

물이 생명인 것이 신학과 관련되고 특히 2회의 리듬자리는 예수님의 자리라는 본 연구자의 주장을 더욱 이어가야 할 약속을 이행하기 위하여2) 하나님의 사랑은 그의 손으로 하나님의 백성에게 하나님의 사랑이 가득담긴 물을 떠서 먹이는 일을 밝히려 한다. 그것은 히브리어 물이 의미하는 바의 곧 일이 된다.  

물을 떠서 먹자면 그릇이 있어야 하는데 곧 예수님의 잔이 된다. 이 잔은 예수님만 마셨지만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은 예수님이 마신 잔에서 나오는 사랑을 먹으면서 그의 일을 하게 된다. 

때문에 기왕이면 하나님의 자녀다운 일을 하는 것은 다름아닌 물의 일로 물이 곧 하나님으로부터 온 손을 가지고 일을 하는 일이다. 사실 남은 생애동안 여려가지 일을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중에서 부득불 해야 할 일은 다름아닌 철학박사 학위로 받은 후의 결과에서 오는 나머지 문제점, 즉 성경에서 하나님이 성경을 통해 알려주고자 간절히 소망하는 일 중의 하나가 그의 외아들을 잘 소개하고자 하려하고 있으며 그 내용이 곧 2회째에서만을 강조하고 있는 점이다.

예수님이 우리들의 생명을 살리는 물이 그 안에 하나님의 사랑이 녹아 있는 물을 먹여야 한다. 이 때문에 내가 물을 먹는 일은 물론 나와 관련된 사람에게도 이 물을 먹여야 한다.  물과 사람관계는 물리적인 물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랑을 먹여야 하고 그리고 반드시 하나님과 관계된 사랑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이 하나님의 외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히게 하면서까지 하나님의 백성을 살리기 위해 사랑을 쏟아 부었고, 그의 죽음까지도 감수하는 사랑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 사랑을 그를 믿는 백성들이 이행해야 할 사랑 나누어 주기이고 이 특징은 물을 통해서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제 2 절  왜 물이 2회 리듬이어야 생명을 살릴 수 있는가


예수님의 몸은 물과 피가 담긴 잔이다. 이 잔 속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담겨 있다. 그의 백성들은 이 잔의 받은 후에야 생명이 다시 살아난다. 이 둘째 자리는 오로지 둘째에서만 가능하다.  창세기에서 요한계시록까지 계속하여 전해지는 이 특징 발견은  이미 철학박사 학위 논문에서 일부 증명하였지만 이에서 멈출 수 없다.

성서는 하나님의 사랑하는 백성들이 늘 따라오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흔적을 남긴다. 그중의 하나가 물이다. 물은 한개 두개로 나뉘어 셀 수 없다. 그런데도 성경 특히 구약성서는 물을 쌍수로 하여 그 둘째자리에서만을 강조한다. 쌍수란 말은 물이 두개라는 뜻이다. 이러한 기이한 특징을 성서는 누누이 물로 그 예를 들고 있다.

성서에서 쌍수 물은 남녀 한 쌍의 개념이 아니다. 왜냐하면 문법의 시제가 남성이기 때문이다. 이 이해하기 어려운 문제는 우선 물이 복수로 표시될 때와 단수로 표시될 때가 따로 있긴 하지만 다만 쌍수 물이 물의 이동성으로서 2회째의 자리를 리듬으로 하기 때문에 그 답의 실마리를 항해 출발할 수 있다.


제 3 절  물은 두개


1. 물은 두개


물은 절대자가 물에게 하나님의 손의 일을 많이 하게 하기위하여서 존재한다. 그런데 기본형은 물이 쌍수이다. 쌍수 하면 남녀 한 쌍, 동물 한 쌍 등으로 그 개념을 고정화 시킬 수 있으나 성경에서는 그런 뜻이 아니라 물은 성이 남성으로 한 개가 아닌 물 두 개, 곧 쌍수이다. 이러한 이해하기 어려운 점은 물이 이동하면서 늘 변화하는 개념으로서 접근 할 수 있다.

물은 흐르지 않으면 고여서 썩게 된다. 따라서 물은 이쪽에서 저쪽으로 혹은 저 쪽에서 이 쪽으로 옮겨진다. 그리고 항상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물은 증발하여 하늘로 오르기도 한다. 그리고 올라가서는 반드시 아래로 내려온다.

이 물은 우선 막연한 개념으로서 그 특징이 한국인에게도 익숙한 ㄱ ㄴ ㄷ ..... 다음의 ㅁ의 ㅁ(미음)과 형태가 같다. 더구나 ‘물’이라고 발음하는 미음발음과 같다. 만일 ‘물’을 옆으로 놓으면 ‘말’이 된다. 이렇게 관련을 짓는 것은 히브리어와 한글은 그 유사성이 많이 들어나기 때문이다.  



1). 물, 쌍수(雙數)

물 םꖹꗫ(마임)은 한글로는 ם(미음)이고 히브리어로는 ם(멤)과 מ(멤)이다. 이 사이에 하나님의 손 ꖹ(요드/하나님의 손)가 들어 있다. 곧 물 םꖹꗫ(마임)이다. 곧 물 םꖹ(임)과 ꗫ(마) 형태를 지니는데 처음에 오는 ꗫ(마)는 ‘절대자로부터 온’ 뜻이다. 물론 생명의 재료이기도 한 이 물은 하나님의 손이 하는 많은 일 의미인 םꖹ(임)이 한국의 임, 곧 사랑하는 사람이 되는 분의 의미와 더불어  םꖹ(임) + ꚤ͇͇의 형식을 가진다. 이  םꖹ(임) 때문에 히브리어 문법이 지니는 자격은  쌍수이다.3)

이 물은 물 두개 즉 처음 글자 ꗫ(마/물)과 둘째의 ם(임/물)을 가지고 있는 물로 기본형은 물 םꖹꗫ(마임)이다. 복수(複數)4)가 아닌 쌍수(雙數) 물 םꖹꗫ(마임/물)은 물이 지니는 이동성으로 하여 마임 םꖹꗫ(마임/물)은 처음 글자 ꗫ(마/물)에서 둘째의 ם(임/물)로 이동하면서 오직 2회째만을 고집한다. 따라서 이 물은 그 이동성으로 하여 변화해야 하는 당위성을 가지면서 흐름을 그 특징으로 하고 있다. 때문에 쌍수가 가지는 이중성은 처음의 물 ꗫ(마/물)을 접두사가 가지는 성질상 떼어내 버릴 수도 있을 때 남은 םꖹ(임/좋은 물과 나쁜물) 즉 성경의 최대문제인 유일하신 하나님과 하나님이 아닌 잡신으로서의 의미가  모두 포함된다.

왜 이러한 유추가 가능한가 하는 것은 히브리어의 접미사로서 붙는 הꖿ(야/여호와의 약자)는 여호와는 단수이다. הꕯהꖾ(예흐바/여호와)의 약자이기 때문에 어미에 오는 복수의 글자인 물 ם(멤/물)이 앞의 ꖹ(이/여호와의 약자의 핵)으로 하여 쌍수로 변하면서 쌍수가 되는 것이다.  

다음에서 더 정의될 것이며 우선 물의 종류는 물 םꖹꗫ(마임/물)5)과 물 םꖹꗪ(마아임/물)6)이 있다. 그리고 정관사가 붙는 ‘그 물’ םꖹꗳꕘ(함마임/그 물)7)과 ‘그 물’ םꖹꗲꕘ8)(함마아임/그 물)이 있다. 이들 모두는 쌍수이며 물이 가지는 동적 이동으로 인한 2회째 자리만을 고집한다.










(1) 물 םꖹꗫ(마임)


기본형이기도 한 쌍수 물 םꖹꗫ(마임/물)은 역시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물의 역할이다. 물 םꖹꗫ(마임/물, 창 1: 6)의 경우 물을 먹고자 했을 때 악취가 나서 마시지 못하는 물 םꖹꗫ(마임/물, 출 7: 18, 21)과 마라의 쓴 물 םꖹꗫ(마임/물, 출 15: 23)과 신 광야에 이르렀으나 백성의 마실 물이 없는 물이다. 르비딤에서는 백성의 마실 물이 없는 물 םꖹꗫ(마임/물, 출 17: 1, 민 33: 14)이다.

호렙산 반석 위에 하나님을 대신하여 모세가 반석을 친 물 םꖹꗫ(마임/물, 출 17: 6)이 있다. 특별히 모세가 두 번 지팡이로 반석을 치매 나오는 물 םꖹꗫ(마임/물, 민 20: 11)은 여호와께서 그 거룩함을 드러내셨더라(민 20: 13)로 되어 있다. 물 쌍수는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거룩함을 드러내고 있다. 거룩하지 않는 개인적인 모세의 두 번 반석을 친 경우는 결국 모세가 가나안에 못 들어가지 못하는 일의 결과가 된다. 곧 말로서 하나님의 명령대로 하면 될 것을 지팡이로 두 번 침으로써 모세는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였다. 하나님의 말을 따라 그대로 복창하는 중요성은 출정(出征)시 입으로 자랑만하면(20편) 개선(凱旋)시에 정금면류관을 쓰게 된다(21편). 하나님을 향한 믿음은 말씀에 있음을 증명된다. 하나님은 그의 입으로 말씀함이 곧 행하시는 것 ויꙜꔯꕖ - לꗌ(행하시는 것을, 욥 33: 13)이다. 물의 정체성은  하나님 때문에 사막에서 솟는 물 םꖹꗫ(마임/물, 사 35: 6)이다.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보다는 못한 물 םꖹꗫ(마임/물,아 8: 7)을 성경은 다시 제시한다. 물이 사랑과 관련되는 것은 쓴 물을 하나님이 달게 하는데서이다.

물이 쓴물이 되는 것은 물이 머리가 될 때이다. 물은 하나님이 아니다. 다만 하나님의 사역을 담당할 뿐이다. 그러므로 머리가 되면 될 수 없다. 만약 머리가 된다면  쓴 물이다(출 15: 23). 머리는 하나님 한 분 뿐이다.

이 쓴 물은 기본형이 רꗫ(마르/쓴)이다.


① 여인을 여호와 앞에 세우고 그 머리를 풀게 하고 생각하게 하는 소제물 곧      의심의 소제물을 그 두 손에 두고 제사장은 저주가 되게 할 쓴 물을 םיꙞꗲꕘ      יꗭ(메 함마림/쓴 물을, 민 5: 18) 자기 손에 들고(민 5: 18)

② 여인에게 맹세시켜 그에게 이르기를 네가 네 남편을 두고 실행하여 사람과      동침하여 더럽힌 일이 없으면 저주가 되게 하는 이 쓴 물의 םיꙞꗲꕘ יꗵꗬ(밈      메 함마림/쓴 물의, 민 5: 18) 해독을 면하리라(민 5: 19)

③ 제사장이 저주의 말을 두루마리에 써서 그 글자를 그 쓴 물에 םיꙞꗲꕘ יꗵꗬ-      תꔟ(에트-밈메 함마림/그 쓴 물에 -민 5: 23)빨아 넣고(민 5: 23)

④ 여인으로 그 저주가 되게 하는 쓴 물을 마시게 할지니 그 저주가 되게 하는      물이 그의 속에 들어 가서 쓰리라  םיꙞꗪꗡ(렘마림/쓰리라, 민 5: 24)

⑤ 이월 십사일 해 질 때에 그것을 지켜서 어린 양에 무교병과 쓴 םיꙞꙡꗱוּ(움      메로림/쓴, 민 9: 11)나물을 아울러 먹을 것이요(민 9: 11)

⑥ 악을 선하다 하며 선을 악하다 하며 흑암으로 광명을 삼으며 광명으로 흑암      을 삼으며 쓴 것으로 רꗫ(마르/쓴)단 것을 삼으며 단 것으로 쓴 것을 삼는      그들은 화 있을진저(사 5: 20)


그런데 이 쓴 물이 바로 하나님을 거역한다는 뜻이 있다. 이 거역은 기본형이 הꙜꗪ(마아라아)이다.


① 이는 신 광야에서 회중이 분쟁할제 너희가 내 명을 거역하고 םꚟיꙞꗱ(메리템      /너희가..거역하고, 민 27: 14) 그물 가에서 나의 거룩함을 그들의 목전에 나      타내지 아니하였음이니라 이 물은 신 광야 가데스의 므리바 물이니라(민       27: 14)

② 그러나 너희가 올라가기를 즐겨 아니하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을 거역      하여  וּרꗱꚟꕰ(바템메루/거역하여, 신 1: 43) 내가 너희에게 고하였으나 너희      가  듣지 아니하고 여호와의 명을 거역하고 천자히 산지로 올라가매(신 1:      43)

③ 너는 광야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격노케 하던 일을 잊지 말고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나오던 날부터 이곳에 이르기까지 늘 여호와를 거역하였     으되 םיꙞꗱꗫ(맘메림/거역하였으되, 신 9: 7)

④ 여호와께서 너희를 가데스 바네아에서 떠나게 하실 때에 이르시기를 너희는      올라가서 내가 너희에게 준 땅을 얻으라 하시되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      의 명령을 거역하여 וּרꗱꚟꕰ(바템메루/거역하여, 신 9: 23)믿지 아니하고 그      말씀을 듣지 아니하였나니(신 9: 23)

⑤ 내가 너희를 알던 날부터 오므로 너희가 항상 여호와를 거역하였느니라 םי      Ꙟꗱꗫ(맘메림/거역하였느니라, 신 9: 24)

⑥ 내가 너희의 패역함과 목이 곧은 것을 아나니 오늘날 내가 생존하여 너희와      함께 하여도 너희가 여호와를 거역하였거든 םיꙞꗱꗫ(맘메림/거역하였느니라,      신 31: 27) 하물며 내가 죽은 후의 일이랴(신 31: 27)

⑦ 너희가 만일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를 섬기며 그 목소리를 듣고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지וּרꗱꕘ(함메루/거역하지, 삼상 12: 14) 아니하며 또 너희와 너      희를 다스리는 왕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좇으면 좋으니라마는(삼상 12:       14)

⑧ 너희가 만일 여호와의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고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면 ם      ꚟיꙞꗱוּ(움메리템/거역하면, 삼상 12: 15) 여호와의 손이 너희의 열조를 치신      것같이 너희를 치실 것이라(삼상 12: 15)9)


“마라”는 한국어에서도 ‘그렇게 하지 마라’에서 찾아진다. 하나님의 뜻을 거역한 이 물은 하나님의 뜻에 의하여 단물이 된다.

쌍수 물 םꖹꗫ(마임)은 물 가운데 하나님이 계셔 그가 물을 움직이기 때문에 단 물이 되었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물을 마셨다.  물(םꖹꗫ/마임)의 ꖹ(이/하나님의 손, 그)는 하나님의 손이다. 


(2) 물 םꖹꗪ(마아임/물)

물 םꖹꗪ(마아임/물) 또한 하나님으로부터 온 ꗪ(마아)와 하나님의 손으로 하는 많은 일 임 םꖹ(임)이 모여 하나님의 손이 하는 많은 일이 그 뜻이다. 하나님이 처음부터 간섭하시고 조정하시어 하나님이 살아 움직이게 하시는, 곧 여호와 הꕯהꖾ(여호와)의 ה(헤/호흡, 숨구멍, 숨쉼)10)이 물을 길게 발음하는 마아임인 쌍수 물 םꖹꗪ(마아임/물)에서 그 예를 요셉이 형들에 의해 들어간 곳이 사실은 물 םꖹꗪ(마아임/물, 창 37: 24)이 없는 웅덩이를 들고 있다. 만약 물이 있었다면 요셉은 그 안에서 죽었을 것이다. 하나님의 오른 손은 하나님은 웅덩이에 물 םꖹꗪ(마아임/물, 신 8: 15)을 없게도 하시어 요셉을 살리시는데 야곱이 번제물과 나무위에 물을 세 번 부으매 단으로 흐르는 물 םꖹꗪ(마아임/물, 왕상 18: 35)이 되게 하시었다. 하나님의 강에 가득한 물 םꖹꗪ(마아임/물, 시 65: 10)은 반석에서 시내를 내사 강 같이 흐르게 하신 물 םꖹꗪ(마아임/물, 시 78: 16)이다. 마른 땅에 강 같이 흐르는 물 םꖹꗪ(마아임/물, 시 105: 41)은 하나님과 관련한 물이다. 물은 하나님의 말씀의 흔적으로 그분의 사랑이어서 말씀이 사랑이다. 물 םꖹꗫ(마임/물)과 물 םꖹꗪ(마아임/물)의 차이는 물 םꖹꗫ(마임/물)에서 이적이 행해지며 그 의미가 물 םꖹꗪ(마아임/물)에서 말씀의 의미가 추가되면서 사랑으로 발전되어 나간다.


(3) 그 물 םꖹꗳꕘ(함마임/그 물)

정관사를 붙여 지시를 나타내는 쌍수 그 물 םꖹꗳꕘ(함마임/그 물)은 궁창 아래의 그 물과 궁창 위의 그 물 םꖹꗳꕘ(함마임/그 물, 창 1: 7, 7)이다. 특정한 사건과 관련되는 물로서 천하11)의 물이 일어서는 그 물 םꖹꗳꕘ(함마임/그 물, 창 1: 9, 10)이다. 이 물은 예수님과 관련되는 유일한 물로써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 되게 하는 물이다. 이에 대립되는 물은 하늘아래 곧 천하의 하(하) תꖏꚜꖩ(미트하트/τό ύποκάτω)로서 기본형 תꖏꚜ(타하트)를 가진 물이다. 뚜렷한 아래12)와 위의 대립관계는 לꘞ(알/위)로 표시된다.

이 לꘞ(알/위)는 하나님을 위하여 번제드려지는 물을 가지며 물은 번제를 드리기 위한 물로써 사용된다.  

하늘아래가 되는 바다의 물고기를 많게 하신 그 물 םꖹꗳꕘ(함마임/그 물, 창 1: 21)과 그리고 40일 동안의 홍수인 그 물 םꖹꗳꕘ(함마임/그 물, 창 7: 17)과 창일한 그 물 םꖹꗳꕘ(함마임/그 물, 창7: 18) 들은 결국 150일의 창일 한 그 물 םꖹꗳꕘ(함마임/그 물, 창 7: 24)과 홍수가 지난 뒤를 말하는 땅위에서 물러간 그 물 םꖹꗳꕘ(함마임/그 물, 창 8: 3)과 감하여진 그 물 םꖹꗳꕘ(함마임/그 물, 창 8:  3, 11)과 땅 위에서 마르는 그 물 םꖹꗳꕘ(함마임/그 물, 창 8: 7, 8)과 감하여진 그 물 םꖹꗳꕘ(함마임/그 물, 창 8: 11)은 동시에 지면에 걷힌 그 물 םꖹꗳꕘ(함마임/그 물, 창 8: 13)이다. 그리고 하갈의 가죽부대 안에서 다 없어진 그 물 םꖹꗳꕘ(함마임/그 물, 창 21: 15)과 홍수로 인간을 멸하지 않을 것이라는 약속의 그 물 םꖹꗳꕘ(함마임/그 물, 창 9: 15)이 모두 그 물 םꖹꗳꕘ(함마임/그 물)이 사용되었다.  따라서 물이 일어서며 하나님의 권능을 드러낸다.

곧 물이 번제드려지며 하나님의 명령으로 모세는 바다 위로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그 위력을 애굽 군대 위에 덮게 했다. 그  물 םꖹꗳꕘ(함마임/그 물, 출 14: 26)・다시 덮어진 그 물 םꖹꗳꕘ(함마임/그 물, 출 14: 28), 쓴 물에 나무를 던지어 달콤한 물이 되게 한 그 물 םꖹꗳꕘ(함마임/그 물, 출 15: 25)과 저주의 그 물 םꖹꗳꕘ(함마임/그 물, 민 5: 22, 24, 27)과 여호와의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바닥이 요단 물을 밟고 멈추면 요단 물 곧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끊어지는 기적의 그 물 םꖹꗳꕘ(함마임/그 물, 수 3: 13, 16)이다.

단 둘레의 도랑에 가득한 그 물 םꖹꗳꕘ(함마임/그 물, 왕상 18: 35)과 엘리야가 겉옷으로 이리저리 치는 그 물 םꖹꗳꕘ(함마임/그 물, 왕하 2: 8)과 그리고 엘리사가 엘리야의 겉옷으로 이리저리 치매 갈라지는 그 물 םꖹꗳꕘ(함마임/그 물, 왕하 2: 14)은 사람은 다르지만 2회의 리듬이다. 그리고 토산이 익지 못하는 그 물과 고치는 그 물 םꖹꗳꕘ(함마임/그 물, 왕하 2: 21-22) 또한 그 물 םꖹꗳꕘ(함마임/그 물)로 하고 있다. 쌍수 그 물 םꖹꗳꕘ(함마임/그 물)은 2분법이 되어 하나님의 흔적인 하늘과 땅을 구분한다.

쌍수 그 물 םꖹꗳꕘ(함마임/그 물)은 이적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많은 양의 물이 가지는 특징은 놀라움을 가지게 하는 특징을 가진다. 대 홍수의 물은 하나님의 힘만으로 가능한 영역이다. 이 엄청난 물을 어떻게 설명되는가 하는 가장 정확한 답은 물이 번제 드려지는 물이다. 하나님이 개입을 하실 때에만 쓴 물이 단 물이 되어 먹는 물이 된다. 하늘 아래 사는 사람의 삶 또한 하나님의 편에 설 줄 알 때에 진정한 하나님의 말씀을 달게 먹을 수 있는 물을 먹는 일이 된다. 때문에 늘 브엘세바 주변에 있으면서도 올바른 물을 먹지 못했던 하갈은 그 물을 가죽 부대에 넣어 하나님께서 주시는 물의 경로를 막고 있었기에 좋은 물을 먹을 수 없었다. 엄청나게 많은 먹을 수 있는 물 주변에 있으면서도 마음이 하나님 편에 서 있지 않을 때에 물은 그 사람의 입으로 들어가는 길이 가죽부대에 들어 있어서 한정된, 그리고 이미 먹어서 갈증 나는 물로 바뀌는 것이다. 

(4) 그 물 םꖹꗲꕘ(함마아임/그 물)


물을 히브리어로 길게 발음하는 그 물 םꖹꗲꕘ(함마아임/그 물)은 수면을 말한다. 이 함마아임인 그 물 םꖹꗲꕘ(함마아임/그 물, 창 1: 2)은 궁창 가운데의 그 물 םꖹꗲꕘ(함마아임/그 물, 창 1: 6)과 방주가 뜬 그 물 םꖹꗲꕘ(함마아임/그 물, 창 7: 18)과 산들을 덮은 그 물 םꖹꗲꕘ(함마아임/그 물, 창 7: 20)과 이삭의 그 물 םꖹꗲꕘ(함마아임/그 물, 창 26: 20)과 갈라진 그 물 םꖹꗲꕘ(함마아임/그 물, 출 14: 21)로서 특성을 지닌다. 이들은 전치사나 접속사와 연결어들로 되어 있다.13) 그 물 םꖹꗲꕘ(함마아임/그 물)은 하나님의 신이 수면에 있어서 물 특히 물 위의 방주와 관련된다.

쌍수 그 물 םꖹꗲꕘ(함마아임/그 물)은 하나님의 절대성을 드러내고 있다. 정관사가 붙지 않는 쌍수 물 םꖹꗫ(마임)은 사랑의 물로서, 물 םꖹꗪ(마아임)은 말씀으로 되는 결과이어서 물이 단순한 물로서만 지칭되지 않음을 물 2회의 리듬으로 하고 있다.

물의 이동성은 왜 2회 리듬으로 시작할까 하는 유추는 물의 쌍수로 하여 물이 사랑과 그리고 말씀과 관련된다. 이스라엘 백성의 죄악과 관계가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그들이 죄악에서 떠나게 하고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을 살게 하려면 숨쉬게 하는 기능이 그에게 달렸다.

2). 물, 복수(複數)


물을 하나 둘로 셀 수 없는 것을 성경은 바다로 하고 있다.  물이 많이 모여 있는 것은 바다이다. 성서는 이 언어를 바다 םיꗬꖸ(얌밈/바다)로 표시하고 또 나날들 םיꗬꖸ(얌임/날들)로 표시한다. 이에 대한 답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나날이 곧 물의 복수이며 파도가 있는 바다를 나타낸다.

왜 바다와 나날이 같은 발음부호를 뺀다면 같이 되어 있을까? 그 답을 성서는 물의 복수를 의미하는 바다 םיꗬꖸ(얌밈/바다)과 나날들 םיꗬꖸ(얌임/날들)은 노아 홍수와 관련한 물의 넘침과 관련된다. 확실하게 성서는 ‘.ל’(라메드) 용법을 사용하여 세상의 거친 파도를 없애주시겠다는 의미로 하고 있다.

바다는 많은 양의 물이다. 그러나 이 물은 소금물이기에 먹을 수 없다. 이 먹을 수 없는 물을 성서는 먹을 수 있는 물을 만들기 위한 방법을 제시한다.  곧 ‘.ל’(라메드)를 단어의 첫 머리에 오게 하여 사용하는데 주로 히브리어휘의 맨 처음에 놓이어 확실한 목적성을 가짐을 보여준다. 가장 뚜렷한 바다의 특징인 파도를 잠잠하게 하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이 숨어 있다.

때문에 바다 םיꗬꖸ(얌밈/바다)과 나날들 םיꗬꖸ(얌임/날들)이 같이 사용된다. 따라서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바다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들이 살아가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게 된다. 왜냐하면 사람은 한정된 날 속에 살다가 죽기 때문이다. 


3). 물, 단수(單數)


(1) 하나님의 강 גꗞ꘵(페레그/하나님의 강, 시 65: 10)


물이 모여 있으면서 바다로 흘러 들어가기 전에 움직이는 대표적인 것은 강이다. 그런데 성서는 물의 단수(單數)를 하나님의 강 גꗞ꘵(페레그/하나님의 강)으로 한다. 성서 전체에서 한 번만 쓰인 하나님의 강 גꗞ꘵(페레그/하나님의 강, 시 65: 10)은 어떤 강인가. 다음은 성서 전체에서 단 1회만 사용된 하나님의 강이다.


  땅을 권고하사 물을 대어 심히 윤택케 하시며 하나님의 강에 물이 가득하게 하시고 이 같이 땅을 예비하신 후에 저희에게 곡식을 주시나이다(시 65: 9)



하나님의 강 גꗞ꘵(페레그/하나님의 강)는 시내 물을 대는 작은 운하, 곧 강으로 개울을 의미한다. 때문에 물 그자체가 아니라 물을 공급하는 의미를 더 진하게 가지고 있다. 이 강은 גꗛ꘱(파라그/쪼깨다, 나누다)에서 온 것으로 하나님만이 가지고 있는 것이지만 나누어 준다는 뜻을 지닌다. 동사로서 하나님의 사랑은 성서에서의 문자들 강 גꗛ꘱(파라그)의 ꘱(파아/입)는 입, ꗛ(라/목적성)는 ‘입으로’, 그리고 גꗛ꘱(파라그)의 ג(그/보은, 은혜를 갚는다)는 ‘은혜를 갚는다’의 뜻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강은 곧 하나님 믿는 백성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갚는 일이 곧 삶이 된다.


(2) 시냇물과 일반 강


우리의 삶은 내가 받은 은혜를 갚는데 있다. 이 뜻을 성경은 졸졸 흐르는 시냇물과 우물과 샘 등으로 표시한다. 이들은 모두 단수로 사용되는데 에덴의 강 넷과 시냇물 לꖏꗻ(나할/시냇물)・강 רꕘꗺ(나하르/강)・나일강 רꔠꖾ(예오르/나일강)・요단강 ןꕒꙣꖸ(야르덴/요단강)과 우물 רꔞꔮ(브엘/우물)・샘 אꙄꗯ(모짜아/샘)・ 샘 רק֗ꗪ(마코르/샘)・ 샘 및 우물 ןי꘠(엔/우물) 등이다.

때문에 성경에서 제시하는 단수의 물들은 물 하나하나 낱개가 아니라 모여서 강을 이루면서 지역적으로 그 특성이 있는 의미로서 구분된다. 졸졸 흐르는 시냇물 의미로서의 시냇물은 나할 לꖏꗻ(나할/시냇물)이며, 제대로 된 큰 강은 나하르 רꕘꗺ(나하르/강)이다. 그러나 이 강이라 하더라도 유명한 하나님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강 또한 단수이기는 하지만 그 의미가 하나님에게 맞추어져 있다. 곧 나일강은 예오르 רꔠꖾ(예오르/나일강)여서 곧 예수님의 ‘예’처럼 하나님이 명령하여 있게 된 רꔠꖾ(예오르)의 ꖾ(예/하나님의 손)으로 역사하시기에 애굽군대를 물 속에 수장시키셨다. 따라서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나일강이 된다. 요단 강 역시 마찬가지이다. 큰 강들이 단수로 제시되는 것은 하나님이 그 강을 전체로 움직이는 것에 불과함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물의 역할은 어디로 흘러가는 목적지가 있게 되는데 곧 하나님에게로 가는 강이 된다. 물이 강을 지나 바다로 흘러간다는 통념을 깨고 성서적인 강의 의미가 되어 있다.

2. 물 두개는 어디에서부터 출발하나


물은 두개이다.

이 물 두개의 쌍수는 어디에서 출발하는가?

이 문제는 여호와 הוהי(여호와) 내지 에흐예 היהא(에흐예)에 대한 관심을 “to live”와 연관된다. 이들 모두  ה(헤/숨구멍, 숨쉼)가 2회 사용되기에 2회 리듬이 된다. 여호와 הוהי(여호와)와 에흐예 היהא(에흐예)가 생명과 관련되는 것은 היהא(에흐예)의 기본형이 היה(하야)이며 때문에 하야 היה(하야)와 하바 הוה(하바)가 아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 스테반 성경에서 헤 ה(헤/숨구멍)14)는 『성구사전』15)에서도 동일의미로 조명된다. הי(야) 역시 ה(5) + י(10)16)로서 절대자 하나님이 숨쉬게 하기 때문에 숨을 쉰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나님이 숨쉬게 하기 때문에 살아 있는 물이 시작된다. 다만 물은 사역자로서 그 역할을 담당하는데 혼자만 살아 있는 것이 아니라 대상을 살리기 위해 움직여야 하는 임무를 지닌다. 왜냐하면 물이 살아있게 하나님이 하셨기 때문이다.

사람은 숨구멍을 통해서 산다. 이 삶은 숨을 쉬어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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