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물에 대한 이야기
- 운영자 2007.6.29 조회 1040
-
[개역]창 1: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교회에서의 물세례의 중요성을 역설하고자 함에 본 연구에서는 성서언어가 갖는 아름다움과 그 의미를 부여하고자한다. 이러한 관점은 성경이 갖는 시적이해에 속한 것이다. 여기에서 시적 이해란 시는 은유와 비유와 리듬으로 표시되는데 구약 성서는 물을 중심으로 여호와의 말씀이 시가 가지는 은유와 비유와 리듬으로 구성되는 특징으로 하여 물이 갖는 시적 사역을 중심으로 연구하고자 하는 것이다. 물의 시적 사역이라는 의미는 본 논문이 제시하고자하는 문학성과 신학성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용어로서 개념설정을 한정하며 물이 갖는 특성이 다양하게 제시됨으로 인한 물이 하나님의 사역자가 됨을 연구하고자 함에 있다. 그러므로 본 연구에서는 물에 대한 신학적 문학적 이해로서 성서언어가 소유하는 물 언어를 중요시하고 물의 성서언어는 시적 사용이라는 관점에서 물의 사역으로서 그 관점을 맞추게 된다. 이에 히브리어가 갖는 물의 어휘가 가지는 특성의 다양성을 통하여 물로 말씀하시고자하시는 여호와의 말씀의 신비를 더 깊이 연구하고자 한다.구약텍스트는 물 언어로 다향하게 바다와 백성과 하늘과 나날과 샘과 우물을 표시하지만 본래의 물 의미와는 다른 신학적 의미로 변이된다. 물은 흘러가고 고이고 밑으로 내려가고 하늘로 오르는 성질을 가져서 이되고 바다가 되고 우물이 되고 하늘로 오르지만 일반적인 물과는 다른 신학적 의미가 있는 물 ??? 어휘와 합성되면서 물의 중요성이 어디로 향하는지를 제시한다. 강 나하르???와 브엘???(NMS)에 이르기까지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과 긴밀하게 연계되는 성서언어에 기대어 오늘날의 물세례의 중요성을 재인식하고자 함에 그 의의를 가진다.
이 브엘은 우물로서 이스라엘 백성의 의미인 성도와 성전의 물이라는 가설을 세우게 된다. 그러므로 신학적 고찰에서는 이 물???이 갖는 확대구조와 이에 대립되는 수축구조, 상승과 하양, 성과 속, 그리고 피안과 일상이라고하는 물의 성경텍스트가 하늘에서 물의 확대구조이면서도 다른 물의 확대구조와는 달리 그 변형을 가지지 않는 독특성으로 하여 여호와의 위치에 대한 논의의 여지를 남겨주게 된다. 이 하늘을 제외한 다른 물의 확대구조는 다양한 특성의 아름다운 물무늬를 성경텍스트는 제공한다.
그러므로 물이 쌍수로 지시되면서 파생되는 물의 인자들을 공동체라는 관점에서 시작하여 물은 물길과 물의 깊이를 드러내면서 물이 여호와의 백성인 신부로서의 역할을 지표하게 되고 물은 예수님이 제공하는 생명수로 이어질 예표로서의 구약연구1)이다. 따라서 성경이 가지는 물의 특성을 문학의 시적시각이 바탕이 된다. 물은
일반적 개념에서 물은 굽이굽이 열두 구비라는 말이 회자 하고 있고 한 우물을 판다라는 두 가지의 관계설정이 가능하다. 그런데 물이 굽이굽이 흐르는 것은 강이고 이 강은 성경텍스트에서 단수(單數)이다. 그러므로 물의 쌍수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물길이 된다는 가설위에 바다와 강등은 전혀 다른 차원에서 전개될 것이다. 물은 진리 인식의 뜻이 있고 이 진리인는 가까운 곳에서 접근되는 물의 의미개념파악에서 물은 인한 진리와 그 안에 전개되는 이야기의 관계설정이 된다. 때문에 성경은 물 즉 진리이다라는 문학적 이해의 시적 접근의 도전성을 해결하기 위한 신학적 선상의 역사성과 물이 단련을 위한 하늘소망의 문학적 관계로 설정된다. 여호와의 백성들이 하늘을 향한 신앙고백서가 엮어질 수 있다. 따라서 성경텍스트의 문채와 수사학적 관점이 된다.
전자의 신학성은 여호와의 초월성이 제시하는 물길2)이 이스라엘의 역사와 밀접하여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들 위에 운행하시어 물길을 인도하심이다. 그러므로 신학적인 이해의 물의 역사성과 구체적인 문학적 수리 개념적 문학성의 관계는 통시성과 공시성으로 논의될 수 있다. 이 물의 흐름이 바다와 강과 연못과 우물과 이 우물을 먹고 사는 이스라엘 백성을 통해 아담과 노아와 아브라함과 모세와 사사와 왕들과 예수와 사도들로 이어지는 12 사람과 열두지파와 12사도들의 맥의 선상에 있어야 하는 당위성과 이 성화과정이 뚜렷이 성경을 통해 일곱 리듬의 문학적 고찰이다. 그러나 엄청난 양의 막연성을 제한하기 위해 성경텍스트 중심의 문채의 12물길과 일곱 우물의 깊이인 시의 외연에 대한 반복리듬의 신비에 대한 관점이다.. 따라서 본 연구의 설정이 하나님의 진리에 대한 깊은 철학성보다는 물이 갖는 관계설정에 따른 하나님의 신비를 맛봄에 그 제한점을 두고자 한다.
이 물에 대한 신약적 연결고리는 물이 가지는 흐름과 영적 생명의 리듬이 물의 개인 상징인 공시성으로서의 구약에서 쌍수이던 하늘이 신약에서 단수로서 들어나고 있고 12사도들이 어부들로 구성된다는 다리역할을 할 수 있는 논문이 될 것이다. 이 점에서 바울은 바다위에서 그의 사역을 담당하는 사도의 역할을 보인다는 가정의 연결을 위한 중간메시지이다. 그런데 이 물은 사랑으로 엮어지는 테마로서 여호와가 그의 백성을 굽어보시며 인도하심의 본받기일 뿐이다.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을 올려다보는 문학의 특성은 하늘바라기이다. 비가 스며들어야 솟아나는 샘물에서 살아가는 이스라엘백성들이 겪는 문학양식의 주인공들의 일상성의 물 이야기가 단3)에서 브엘세바4)까지의 사이에서 전개된다. 이 문학양식의 일곱리듬은 하늘에 있는 이를 바라보며 사는 백성의 삶의 여정이 된다. 이 물의 놀랍게도 물이 단련되어 하늘이 되는 언어적 접근이 가능하며 물의 역사로서 물이 궁극적으로 하늘로 올라가는 천국소망의 길을 본 논문에서 제시하고자함에 있다. 그 리듬은 바다에서 강으로 그리고 우물과 성소의 물두멍으로 생명의 말씀을 먹고 말씀을 마음에 새기는 길이 되게 함을 발견하고자함에 본 논문의 문학적 이해가 된다. 따라서 물에 대한 신학적 이해와 물에 대한 문학적 이해는 긴밀한 연관성으로서의 논제인 물에 대한 신학적 문학적 이해가 된다.
물에 대한 신학적 문학적 이해의 궁극적인 목적은 형통의 목적성이며 이 신학성과 문학성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닮은꼴인 물들의 행복파장이 운행되며 물이 갖는 흐름의 신학적문학적 닮은꼴의 끝없는 통과를 파악하고 함이다. 따라서 물의 흐르는 성격과 인간이 늘 흐르면서 형통이 되어야하는 점이 서로 다르되 닮은꼴이 되는 이 관점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살아있게 하신다는 생동력에의 촛점이다. 따라서 여호와의 역사는 창 1:2에서 보이는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이 혼돈하고 공허하고 흑암이 있는 깊음 위에 운행하시어 알을 품듯이 시작하는 첫 과정인 물의 역사는 시작된다. 이 시작의 물길을 계속 추적함에 본 논문의 목적이 있고 또한 끝없는 미완성으로 남게 될 것이라는 것이 본논문이 갖는 한계성이다. 이점은 성화의 과정이며 우물을 파 맑은 하늘을 만듦으로서만이 가능한 것이다. 그러기에 성경이 이미 깊이파기의 일곱 우물 브엘세바를 지시하고 있음을 발견하는 일이다. 동시에 이 성화 완성은 그 초월성의 여호와가 창조해가는 과정이 일곱 리듬이다. 이 도전적인 창세기 첫 장부터 제시하는 일곱 리듬의 물은 인간이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 속에서 이루어지는 기쁨과 즐거움의 마음바탕의 깊이다. 비록 열두구비의 굽이굽이 도는 삶이지만 형통하게 흘러가도록 하는 마음깊이의 인식을 위한 연구에 존재에 목적을 둔다. 나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하나님의 말씀이 되기까지의 목적을 두게 하신 하나님의 성경 안에서 운행하시는 말씀의 물길은 이스라엘 땅이 지형적으로 바다 가운데 땅이라는 점이다. 그들이 애굽을 떠남에서 비롯되는 바다가운데와 홍해5) 건넘의 리듬은 지속성으로서 물과 관련된 가나안땅의 특수한 물 얻기와 관련한다. 비가 스며들어야 솟아나는 샘물에서 비롯되는 문학양식의 주인공이 겪는 물 이야기가 되고 이들의 특징은 문학양식의 일곱 리듬을 가지게 된다. 이 물의 역사는 바로 이스라엘의 역사가 된다. 그 리듬은 바다에서 강으로 그리고 우물로 이어져서 성소의 물로 이어지는 물길이 있게 된다. 이 물길은 세례와 이 지상에서 천국실현의 소망이 교회의 중요성과 열두지파6)의 길까지 이어져서 구약에서도 신약의 일들이 예표 되어 지는 문학적 리듬이 긴밀하게 물에 대한 신학적 이해와 긴밀한 연계성선상에 놓인다는 가설을 문제로 제기한다.
물의 원형적 마임으로 접근하는 물의 파동은 첫째는 진동 둘째는 공명이며 셋째는 물의 닮은꼴이라는 점이다. 이 파동은 신앙의 길이 된다. 물이 갖는 흐르면서 자신을 정화하고 순환하고 행복을 찾는 물길이 답이 되는 환상의 깊은 자연성의 흐름인 물길은 초월성으로서 신학의 영역이다. 그러기에 사람의 일생은 물에서 시작하여 물에서 끝나는 바로 물의 마음 닦기와 물길가기가 성경의 텍스트적 묘사로 인해 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제시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게 된다. 가장 아름다운 인생은 흐르는 강물과도 같다. 때로는 물보라를 일으킬 때도 있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흘러야 하는 물의 흐름은 하나님 창조의 역사이며 물의 역사성에서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마음을 읽어가면서 행복한 삶의 파장을 맞추는 일이다.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기다려지는 하나님 창조의 역사가 내 안에서 일상 삶의 흐름인 환경을 초월할 수 있는 물의 재잘거림이 외적인 사건보다는 내적인 마음바탕의 깊이로 접근될 수 있는 이 우물깊이의 연구는 물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천국소망의 길은 내 안에서 보람요법의 물길이다. 내가 전능자를 소망하는 사역을 할 수 있는 길의 탐색이 된다. 토마토 한줄기에 무려1만개의 토마토열매를 달 수 있음의 기대치가 된다.
이에 본 논문을 통한 몇 가지 해결점이 제시되는데 첫째 물에 대한 신학적 문학적 이해가 관계설정이라는 점에서 물이 갖는 일반성의 파동이 본 논문이 초점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 특별한 물에 대한 신학적 문학적 이해는 관계 설정이라는 점이다. 물이 갖는 특징의 하나로 첫째 물의 진동이 이 논제와 어떻게 관계되어지는가? 둘째 어떻게 공명 되어지는가 셋째는 어떻게 물이 가지는 닮은꼴이 갖는 물에 대한 신학적 문학적 이해로서 관계되어지는 닮은꼴을 해결해야 한다는 점이다.
강 위에 아담 에덴동산을 관리, 노아의 방주짓기, 아브라함의 사람짓기, 모세의 언약궤7) 짓기-물을 지나오기 물 위에 살아남기 물 위에 몸 짓기, 다윗의 성전 짓기 율법 짓기, 예수의 제자 짓기 집짓는 아버지 요셉 목수의 아들로 사람 짓기, 바울의 물위에 뜬 배에서의 사역인 복음 짓기는 그 연관성을 찾게 하는 즐거움의 대상이 된다.
2) 물에 대한 신학적문학적 이해의 연구사
물에 대한 신학적 문학적 이해의 연구사는 물의 다양한 각도의 연구의 가능성으로 하여 광범위하다. 따라서 본 논고에서는 그 범위를 제한할 수 밖에 없다. 이 임의적인 제한부분은 첫째 성서언어 물과 하늘은 쌍수인데도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이로 인한 연구가 차연성을 가진 연구가 선행되었는지에 대한 탐색이 된다. 또한 물과 하늘의 긴밀성 다음으로 바다가 되는데 천하의 물이 한 곳으로 모이어 바다가 되었다는 성서어휘적 문맥에 따른 바다가 가지는 사역의 연구사를 살펴야 함과 동시에 이 바다는 독립된 존재가 아니라 그 연계성을 나날과 유사성(모음부호외에는 동일)으로 하여 선행연구가 있는가 하는 점이다. 따라서 바다의 거대한 사역은 여호와의 심판 이미지 연구사보다는 전자 죄씻음 이미지에 주력된 선행된 연구들을 살피게된다. 그 다음 강과 우물의 선행연구로서는 십자가신학 즉 강의 수평적 구조와 우물의 수직적 구조에 따른 성수와 복음이미지로서의 선행 연구사를 살피는 일이며 또한 백성 성서언어가 눈과 관련되고 이 눈은 샘과 같은 맥락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백성에 선행연구와 이 백성에게 주어지는 말씀과의 관련성에 대한 연구 선행여하이다.
그러므로 본 연구의 선행된 연구사는 성서언어를 기반으로 하되 보편적 진리인 물이 개입된 여부의 선행연구사가 된다. 물과 하늘?바다와 나날?강과 우물?백성과 말씀의 짝이 서로 짝을 이루면서 황금율을 이루는 서너가지 신학에 있는가하는 점이다. 구약에서의 십자가의 상형에 대한 관점과 이들이 서로 화합하여 그리스도적 삶의 사랑을 예표로 한 기본적인 선행연구사를 살피게 된다. 이 연구사탐색은 바로 물 성서언어가 쌍수라는 관점에서 출발한 것이며 영적인 물과 물리적인 물의 중요성이 대두된다.
일차적으로 물에 대한 신학적 문학적 연구사는 아리스트텔레스가 제시한 마음의 물인 울음(미학적)의 카타르시스 즉 눈물1)까지도 빠뜨릴 수 없다. 그리고 여호와의 초능력과 관련되는 물 없이 생명이 살아나는 아골골짜기 사건까지 합하면 물이 없는2) 관계의 설정도 물 연구사에 포함된다. 이러한 신학적 문학적 이해의 충족적 이해의 다양성은 궁켈(Hermann Gunkel, 1862~1932)이 제시한 성서에 대한 문학작품관점으로서의 일차적 연구가 있다. 문학이 갖는 사랑과 눈물과 성서언어가 제시하는 사랑과 눈물이 합하여질 모든 요건은 지리적 역사적 산물 안에 자리 잡은 여호와의 백성으로 귀결되고 또 그 효력을 발휘한다. 그 중심에는 여호와와 그의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자리가 있다.
궁켈은 수많은 민족들의 문학작품과 동일한 성질을 찾아내려 하였다. 이 점은 보편적 진리인 동일성 찾기3)이다. 이 Gunkel의 접근은 시의 보편성에 접근, 인간의 삶은 영원한 질서에 다스려진다고 보고, 서로의 결속이 거대한 통일체를 이루는 한 점을 보고자 하였다. Gunkel은 초기 낭만주의 이름 하에 히브리시문에 대한 Herder의 책을 읽고 구약의 핵심을 종교적인 삶, 즉 경건성이며, 이론은 단지 침전물에 불과하다 하였다. 로트(Robert Lowth)도 1753년 『히브리인들의 성시(De Saera Poesi Hebraeorum)』에서 역사적인 관점에 서서 성서가 일반적 일상과 동떨어진 것이 아닌 이스라엘 민족과 초대 그리스도교의 역사를 서술하는 구약성서의 시론과 문학성으로 선행되었다. 또 헤르더(H. J. Herder, 1744~1803)도 『히브리 시의 정신』에서 성서작품을 문학작품으로 본 것 또한 선행된다. 궁켈은 로트와 헤르더의 영향으로 성서에서 원시적 형태를 띤 문학단편일수록 가장 본질적인 종교의 진리를 담고 있다고 보았다. 또한 진리의 대부분이 성서적 시문학 안에 담겨져 있다고 보고 성서적 서사시와 시편과 창세기와 묵시록에 몰두하며서 히브리인들의 문학성과 감수성을 파악하였다. 이 결과로 양식비평사의 창시자가 되었다.
성서언어가 가지는 시적 폼은 특히 시편에 대하여 논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시편 해석가들4)은 시편을 이스라엘의 종교적 발달의 시대로 주전 2세기의 마카비 혁명(Maccabcan Revolt)시대로 본다4). 올스하우젠(J. Olshausen, 1800~1882)은 이 견해를 그의 주석에서 발전시키고5) Bleek의 Einleitung의 시편 항목 후기 연대설을 비판하면서 히브리 본문의 비평적 편집의 본문과 문법적인 각주기입6)에 열중한다. 두움(B. Duhm)도 1899년에 발간된 시편 주석에서 연대가 마카비 시대임을 입증7), 시편 일부는 초기인 페르시아 시대, 137편은 바벨론 포로 시대로 주전 2세기와 1세기의 당파간의 갈등과 바리새 운동의 독특한 개인의 경건에서 오는 첫째 제의 제도와 의식들로부터 자유가 반영된 포로 후기, 둘째 주전 1세기의 유다에서 발생한 정치장악세력의 제사장직과 종교지도자들의 부유층 토지소유자들의 압제에 맞부딪힌 가난한 유대인들로 주전 2세기에 안디오쿠스 에피파네스(Antiochus Epiphanes)에 대항 봉기했던 아시딤(Hasidim) 집단들의 경건한 공동체로 후에 바리세당으로 발전하는 자들의 저작으로 본다, 셋째 다빈도 현상을 보이는 시편의 여호와의 ‘기름부은자’는 마카비아 왕자들과 호의적이었던 외래자라 하였다. 이 학설에 대한 비판으로 커크페트릭(A. F. Kirkpatrick)의 주석8)은 포로기이전의 왕정시대 유다를 통치하던 왕들을 위하여 저작, 시온에서 여호와의 능력을 표현한 시편은 주전 701년 예루살렘이 앗스르 왕 산혜립으로부터 구원받은 직후의 저작으로 본다. 마카비 시대의 경건과 종교적 갈등에 대한 내용설을 부인하는데 이 관점을 달리 하는 드라이버(S. R. Driver)의 『구약성서 문학입문』(Introduction to the Literature of the Old Testament)9)이 있다.
시편의 연대를 후기로 보는 관점의 근거는 시편 속에서 공동체내의 갈등과 투쟁의 표상에서 비롯된다고 본 랄프(A. Rahlfs)의 견해10)로 슈멘트(R, Smend)의 소논문에서 시편의 화자인 ‘나’는 공동체의 의인화(personification)로 불평의 대상이다. 민족전체의 원수로 당면한 갈등대상인 국제적인 성격11) 또한 마카비시대 옹호론으로 비탄을 받게 된다. 시편의 갈등들이 후에 출현되었다는 점은 시편의 기름 부은 자, 시편기자가 하나님께 구원을 요청하는 탄원들의 갈등의 속성으로 제 1인칭의 단수의 중요성이 계속되는 문제의 심각한 한계성을 보인다. 이에 도전하는 궁켈(Hermann Gunkel)은 구약성서의 문서들 단위의 유형(type), 양식(gattung)의 관심을 기울여 1904부터 양식사(gattungsgeschichte)의 방법론으로 종교학 사전(Die Religion in Geschichte und Gegenwart)초판12)과 개정된 제2판13), 영어로 출판14), 시편전체 주석15)후 그가 죽고 베크리히(J. Begrich)에 의해 1933년 완성16)한다. 궁켈에 의한 양식사 방법을 시편 주석에서 개발하려 했던 슈태르크(W. Staerk)는 『구약성서 문서』(Die Schriften des Alten Testaments) 총서17)를 서정시(Lyrics)로 보아 시편들의 공통적 성격을 찾는다. 궁켈은 1 찬양시 2 단체 탄식시 3 개인 탄식시 4 개인 감사시 5 제왕시로 분류하고 크게는 감사시(창양시)와 탄식시, 세분분류로 단체와 개인의 시로 분류, 제왕 시는 시온의 시와 여호와 대관식시인 찬양시로 제1인칭 단수의 탄식과 감사시는 이스라엘백성들의 개인적인 시로 본다. 그 촛점은 후기 계층의 개인작품18)으로 본다. 시편에서의 ‘나’의 속성 연구지속은 궁켈의 제자 발라(E. Balla)와 슈멘트(R. Smend)도 이 1인창 단수 형태가 경건한 공동체를 의인화시킨 것19)으로 본다.
궁켈은 시편에서 개인 탄식시인 육체적 고통에 대한 질병의 다빈도 현상은 조롱과 압제로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냉대로 표출, 제왕 시는 포로 이전의 이스라엘 출생의 제왕들이라는 견해가 커크패트릭과 더불어 대관식의 시(시 2; 110편), 제왕의 결혼식 시(시 45), 왕조건립의 연례축하행사의 시(시 132)로 분류한다. 왕의 승리, 땅 지배, 하나님의 지혜와 평화 등에 대한 시적 언어는 고대 동양의 궁정에서 자연스럽게 행해지전 과장법의 문체에 귀속시키고 시편과 예언서와의 연계성으로 보아 종교의 개인 체험은 예언자들이 가졌던 이스라엘 종교발전의 모습이라는 점에서 이스라엘의 예배와 영성(Spirtituality)의 새로운 가능성을 연다.
노르웨이 학자 모빙겔(S. Mowinckel)은 궁켈의 기초위에 덴마크 인류학자 벨렐름 그뢴베히(vilhelm Grφnbech)의 고대 인도. 유럽 문화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튜론족의 문화』(the Calture of the Teutons)20)에서 원시사회의 제의의 역할에 관심을 기울여 고대 사회 제의의 역동적이며 극적인 성격이 공동체를 결속시키는 접착제로 보아 제왕시 연구를 궁켈과 그뢴베히에에게 공동으로 헌납하며 제왕들이 신화적이며 제의적인 역할을 크게 수행한 ‘민족신의 진정한 화신’의 제의적 역할이라는 관점이다. 모빙겔은 1921~24년간의 시편연구 Ⅰ-Ⅵ(Psalmenstudien Ⅰ-Ⅵ)21)에서 궁켈의 제의와 연결된 탄식시, 찬양시, 제의시로 나누고 헌신의 목적을 위한 개인 저작이 나중에 제의에 속한 양식이 되었다는 설에 대립한다. 그는 현재 보존된 시편이 처음부터 제의에 사용되기 위하여 제작, 시가와 예언서와의 관련의 관점인 궁켈의 개인적 시편 저작 형태의 발전의 중요성에 대한 견해를 받아들이면서도 정반대의 해답을 가진다. 그는 시편 기자들이 이스라엘 초기 제의 가운데 성행했던 사상, 언어, 종교적 형태들을 진술, 예언자들이 이것을 채택 새로운 상황과 적용시켰을 따름이라는 것이다.
궁켈은 우주의 왕이신 여호와의 대관식을 축하하는 찬양시 집단연구( 시 47, 93, 95~99)언어와 사상(사 40~55장에 종말론)으로 포로기 예언자들의 설교에 의존하여 쓴 시로 보아 제왕시를 특정범주로 분류, 고대 이스라엘에서 왕의 역할을 재평가하도록 유도한다. 구약성서의 법전에서는 왕이 거의 언급되지 않았고 또한 역사서들은 왕정 제도를 매우 비판적으로 설명하는데 반하여 제왕시편들은 계속적으로 현저하게 고양된 종교적 언어로 표현된다. 왕이 여호와의 아들(시 2:7), “사람의 아들 중 가장 아름다운 자”(시 45:2)이며 어느 곳에서든지 신으로 호칭되는(시 45:6) 예들로 궁정 양식의 아부성에 대한 반영으로 간주하여 언어의 중요성을 평가 절하한다. 이에 반하여 모빙겔은『시편 연구』 제2권에서 초기 이스라엘의 신년 축제에 사용하기 위한 저작으로 신년 축제는 가을에 행하여지고 여호와를 왕으로 찬양, 그를 우주의 보좌로 고양시키는 행사에서 보이는 바벨론 포로에서 고향땅으로 귀한 사건에 적용시킨 제2이사야 선지라는 점이다. 유월절 신년 축제행사(23:16, 34:22)는 포로 후기 자료(레위기 23:23)이며 수양의 뿔로 나팔을 부는 것을 포함하는 행사는 하나의 대관식의 대축제는 바벨론 아키투(Akito) 축제 제사 의식과 랍비 시대의 후기 유대 작가들의 주석에서 그 근거를 찾으려 하였다. 이점은 장막절에 고착되었던 창조 상징 주의적 실질적 요소이어서 자연의 힘에 대한 통제, 계절의 규칙적 순환, 다산, 안정, 질서 등 우주 전체에 대한 왕권으로 해석한다. 이 통치권은 종말론이 아니라 제반 제의적 이데올로기와 신화-하나님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에 대한 시로 아이러니컬하게도 결국 이스라엘의 종말론의 기원과 관계성이 되게 된다. 왕정 기간의 이스라엘과 유다를 엄습한 정치적 불행의 현실성이 여호와의 신적 통치가 백성들에게 도래하는 광대함과 번성함에 대한 종말론적 희망을 형성시키는 미래 투사로 본다.
이에 대한 거센 반발비판은 언약궤의 중요성에 대한 언급으로 1927년 한스 슈미트(Hans Schmidt)는 지상의 왕이 신적인 왕, 즉 여호와의 구현22)이다. 이 반박은 초기 이스라엘에서의 왕의 지위와 역할을 재발견하려는 참신한 시도이다. 사실 모빙켈 자신도 축제에 대한 이해를 수정하게 된다.23) 가을축제는 크라우스(H. J. Kraus)는 시온축제로 다윗 왕정축하와 언약궤 거주지로서의 성전 입지인 시온산의 신적 선택을 축하하는 행사24)라 하나 다른 학자들은 모빙켈과 매우 가까운 견해들을 주장25)하면서도 이스라엘 특유의 형태의 전통성을 인식하는 내심의 희망으로 인한 바벨론 축하 행사와의 유사성보다는 모빙켈의 후기 수정에 지지를 보낸다.
모빙켈은 제의 때의 왕의 지위가 이스라엘 왕이 행해 왔던 제의적 역할 재구성이라는 점에 기울이려 하였다. 또 다른 관점에서 초기 이스라엘 왕권의 종교적 중요성은 제왕시의 연계연구로 프라저(J. G. Frazer)의 인류학, 민속학적으로 접근되는 원시 사회에서 왕권이 신의 현현으로 역할 했음을 중요시하였다. 후크(S. H. hook)는 의식적으로 성서와 관련한 『신화의 의식』(Myth and Ritud)26), 『미로』(The Labyrinth)27)를 펴내고 『미로』에서 존슨(A. R. Johnson)이 가진 고대 왕권이 제의에 관련된 역할을 한 모빙겔의 제안을 발전시키고28) 존슨은 다윗의 왕권이 가나안 왕권의 고대 전승을 예루살렘에 도입한 것이며, 고대 근동과 이스라엘의 왕위 형태 사이의 결정적 연결점을 제공한 것이라 주장한다. 이 견해는 시편의 많은 제의적 특성들과 반신화적 주제들을 설명함을 크라우스도 전승한다. 많은 스칸디나비아 엥그넬(I. Engnell), 비덴그렌(G. Widengren), 벤첸(A. Bentzen) 등도 이스라엘 왕정형태의 논쟁에 고대 근동의 뿌리 안에서 메시아 대망의 모습으로 그 생명력과 최후 부활을 설명하려 시도한다.
이 때문에 시편 2:7절이 제시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구절에 대하여 연구하는데 제의적 전승들, 또는 단순히 궁정 아부 등이 어느 정도로 용어 사용인지 이스라엘 제의에서의 왕의 역할을 시편에 의하여 제공되는 증거의 기초로부터 해석하려는 보다 개선된 이해하의 조명이 요구되었다. 이스라엘에서의 제의에서의 왕의 역할을 시편들을 보다 근본적인 연구로 접근하는 특징은 시편들을 제왕시의 범주로 끌어들이려는 경향이다. 이 때문에 가을축제에서 불가결한 역할을 수행했다는 믿음은 여호와 대관식의 찬양 시와 시온의 찬양 시에서도 축제와 연결된다고 보았다. 스웨덴 학자 엥그넬(I. Engnell)은 시편 대부분의 시가 처음에 왕에 의하여 저작되어29) 가을축제 때 계약 갱신 축제의 성격을 가진다고 보았다. 그러나 바이저는 이것들은 여호와 대관식에 대한 찬양시는 포함하지 않았고 여호와의 대관식의 시는 궁겔의 방법처럼 종말론적인 것으로 보았다.
시편에서 경건한 사람들의 삶을 이렇게 무자비하게 위협하는 원수들은 과연 누구일까? 두움(B. Duhm)은 대부분의 시편의 연대를 마카비 시대로 결정함으로써 시편에 나타난 원수들이 주전 1~2세기 당파 전쟁 기간의 유대인이라 결정한다. 바리세인들이 폭군 통치자들에 의하여 고통을 당했던 당파간의 분쟁이 여기에 반영되었다고 본다. 랄프(A. Rahlfs)는 시편 기자들이 자신을 가난한자와 비천한 자로 표현하여 억압받는 자들의 정체성과 억압하는 자들을 부요하고 토지를 소유한 지배계급으로 정의한 원수들의 정체는 궁켈 연구의 전면에서도 들어난다. 제자 발라(E. Balla)는 많은 탄식시의 화자인 나는 개인적인 이스라엘 평민이었으며 제일인칭 용법은 문자적으로 이스라엘의 의인화도 아니고 이스라엘의 경건한 자들의 공동체도 아니라는 점이다. 더 나아가 궁켈은 이러한 시편이 주전 1~2세기에 기원했다는 제한된 주장으로부터 자유로움을 준 나의 화자에 대하여는 열린 해석이 있게 했다. 모빙켈은 시편 기자들의 불행은 불법을 행하는 자들로 보았으며 독일학자 슈미트(H. Schmidt)는 하나님이 변호를 위한 구체적인 행위, 즉 표적을 보여줄 것을 간구하면서 그들의 결백을 하나님께 탄원하는 시로 보았다. 스미트는 제사장들 앞에서 열린 일종의 종교적 재판으로 예배자가 맹세와 더불어 조사를 받고 결백을 요구하는 시로 보았으며 이 견해는 바이엘린(w. Beyerlin)에 의하여 광범위하게 발전된다.30) 델레카드(L. Delekat)는 시편의 고통의 본질은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 도피처로서 성소에 들어가는 것을 허용해 달라는 탄원 시로 본다.31) 원수들은 시편기자들을 고소하는 자, 추적하는 자이었기에 시의 형태로 한 항변서라 하였다. 데레카트는 이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을 형성하는 제사장직 신탁도 있어서 부당한 고소, 질병, 험악한 이웃, 부요한 압제자들에 대한 고통의 형태시가 된다고 하였다. 이 점은 시편들이 지니는 구조와 정확하게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
종말론에 대한 관심은 시편 전체를 통틀어 원수들은 일반적인 민족의 원수들 앞에 처한 탄식시로만 볼수 없다32) 하였고 궁켈은 구약성서 연구의 초기에 나훔 1장에 관한 소논문을 출판하면서 예언서 1장이 제의적 알파베트시의 형태로 시작함33)은 두움의 견해와는 달리 시가와 예언시의 예언과 시가 사이의 견해로 보고 두움은 시가는 예언자에 의하여 시작된 경건과 도덕서의 후대의 반영으로 보았으며 궁켈의 시가가 예언에 의존되었다는 설에 서기는 하였지만 예언서는 시가서의 영향아래 있다하였다. 궁켈도 예언서의 알파베트시가 미가서의 결론 부분과 이사야 33장에 나타남을 주장한다. 34) 그는 주된 흐름이 예언으로부터 시편으로 이어졌다고 보고 예언에서 시작된 많은 사상, 주제, 어휘의 이미지가 시편에서 발견되었음을 역설한다. 그는 이스라엘의 종말론적 소망이 이미 예언과 함께 시작되어 많은 시편, 여호와의 대관식의 찬양시에 나타난다 하였다. 이 찬양시들은 제2이사야의 예언에 의하여 사용된 특정 사상과 이미지들을 채택하고 정교하게 다듬었다는 것이다. 궁켈은 특정 제왕시 시 2편, 110편, 그리고 시온의 찬양시-시 46편, 4편이 야웨의 우주적 통치에 대한 종말론적 소망의 발전을 지적한다. 궁켈은 종말론적 소망 외에 시편에 이월된 예언자들의 설교에 담긴 주제와 사상에서 제의에 대한 특별한 희생제사 제도에 대한 비판으로 보았다. 제의들은 대 예언자들에 의하여 만들어진 비파에 의존되었다고 본다. 사회 정의에의 책임에 대한 일반적 관심도 역시 예언이 시편에 영향을 끼쳤다고 보았다. 이점은 이 영향문제 뿐만 아니라 문학양식의 영향-궁켈은 명확하게 분류하려하였다- 사상에서도 해당된다. 시편 2:7~9왕에 대한 하나님의 보증이 원수들에 대한 승리와 원수들의 철저한 굴복을 왕에게 약속했던 것이다. 여기에서 궁켈은 예언에 나타난 신학 양식이 시편에 채택되고 사용되었다고 주장, 그러나 궁켈은 왕정시 양식과 사상의영향이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렀다는 것-에언이 제의로부터 생성된 예배의식 양식을 사용한 것-을 전적으로 수용했다. 이 때문에 예배의식, 찬양시, 탄식시들과 함께 서로 상호작용이 있다. 그러나 궁켈이 지적한 영향의 주된 힘은 예언서에서 시편으로 이어진다고 보았다는 것이 명백하다. 이러한 결론은 궁켈이 예언자들의 창조적 독창성을 인정한 그의 종합적인 확신과 같은 맥락이다.
모빙켈이 시편 연구 1-6에서 궁켈의 시편 해석을 수정 발전시킨 것은 영향관계로 보는 것이며 궁켈에 제기된 문제점을 주목하여 궁켈의 설명을 배격하면서 모빙겔은 자유롭게 제의 형성자에 대한 독창적인 배경을 연구, 찬양시들은 더 종말론적 찬양시가 아니라 제의의 사상과 의도들에 대한 증거, 시온 찬양시도 커크패트릭은 산헤립의 지휘 아래 앗수르의 공격 후 주전 701에 예루살렘의 포위가 풀린 것을 축하하기 위하여 저작된것이라 본다. 모밍켈은 그렇지 않다고 주장, 그는 신화의 무시간적 언어를 사용하여 시온산으로부터의 여호와의 승리를 축하했던 고대 제의 찬양시들이 주넌 701년 시편을 예루살렘에 대한 앗수르의 관대한 행위가 기적적인 신적 승리의 후광과 명성을 획득하게되었다는 것이다.35)
모빙켈은 시편의 종교는 예언자들의 영적 배경이라하였다.36) 모빙켈은 계속 더 이스라엘의 예언과 시가 사의 관계의 문제를 연구37)하였고 에언자들에게서 자주 발견되는 신탁 양식과 이에서 모방하고 차용한 실례설명과 직접적으로 설명, 시편에 포함된 신탁적 발언의 예언자들이 성소의 특정 직업이었을 가능성을 보았다. 이 예언자들과 제사장과의 구별 혹은 같은 동일인물로 보는 것은 아주 중요한점으로 궁켈을 이렇게 되면 제사장직의 개념이 흐려질 수 있으므로38) 지탄을 받았으나 제사장직과 예언자 사이의 긴밀성은 옳은 시각이다. 별로 주목을 끌지 못했으나 에언자의 중요성은 여전히 남아있게 된다. 특정예언자의 연구는 제2이사인데 궁켈의 제자이자 친구인 베크리히가 제2이사야에 있는 몇 개의 예언 양식이 시적 상상력과함께 시편으로 파생되었다는 주장을 확립39)하여 예언자들이 확신의 시작이라는 양식과 언어를 사용했음을 추적, 궁켈은 이것이제사장이 예배자의탄식에 응답하는 제의적 상황에 속했던 것으로 보았다.40) 제2이사야 역시 예언은 이스라엘의 시가, 사상, 관용어귀, 시적 양식들에 의하여 흠뻑 젖어 있다고 보았다. 제2차대전 후 베크리히의 죽음은 양식사 방법론의 대가가 구약성서 신학계로부터 사라지게 된다.
모빙켈이 예언과 시가 사이의 상호연관성에서 우선성에 관한 문제가 예언과 시가를 근본적으로 재평가 즉 예언자들과 제의사이에 있었건 가파른 절벽-벨하우젠과 두움이 이스라엘종교 발달사를 재구성하는데 중요한 국면을 형성-하는데 기초를 확립한 것이다.
시편연구가 계속되지만 이튼(J. H. Eaton)이 1976년 『왕권과 시편』(Kingship and the Psalms)41)에서 맨 처음 모빙켈이 시험적으로 제안했었고 비르켈란트가 1933년 발전시켰다고 되풀이, 궁켈이 주장한 많은 시들이 다윗왕에 의하여 말하여진 것이라 보면서도 더 많은 양은 설득력이 없다고 보고 덜한 22개의 예들을 보인다. 시편의 제왕시(royalpsalm)는 이스라엘에 깊이 뿌리를 박고 있는 신화의 언어와 표상을 사용하는 복합적인 이스라엘의 왕권 이념을 밝히 조명, 그러나 신화가 하나의 완전한 실재성이 있는지는 의문스럽고 왕의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정교한 제의 드라마가 존재했었다고 보는 견해이다. 이스라엘의 제의찬송이 이스라엘밖에서 유래한 표상과 주제들을 폭넓게 수용한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단순히 빌어 왔는지 아니면 제의 찬송이 자신의 완전한 형태를 갖추게 해 준 제의 드라마 전체를 수용했는지는 여전히 입증 되지 못한다. 그러나 히튼의 주장은 1인칭의 탄식시들이 본래 국가적인 인물로 활동하는 왕에 의해 사용될 목적으로 만들어졌다는 주장에 기초한다. 이시들은 곤궁함에 대한 묘사로서 제왕시와의 유사성과 그 불행들이 왕과 일률적으로 관련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화자(speaker)가 동일할 수 없음을 보여주는 예가 된다. 왕과 연관은 국가가 어려움에 있을 때에 해당될 뿐이기 때문이다. 이 고난에 대한 시적 은유는 저작과 관련된 의도적인 특징이라는 결론에 이르고 탄식시의 질병과 재난시기는 궁켈이 세이볼트(K. Seybold)의 『구약성서에서의 탄식시, 질병의 규정과 나열에 대한연구-그리고 봉헌시』(Das Gobel des Kranken im Alten Testment. Untersuchungen zur Bestimmung und Zuordnung der Krankheits-und Heiligungspalmen)42)에서 질병경험과 관련된 시편 38, 41, 88의 관련된 시와 추론가능성의 시 30, 39, 69, 102, 103, 사 38:9~20에서와 다른 시편에서도 그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바이얼린(W, Beyerlin)43) 은 다수의 탄식시들(시 3,4,5,7,11,17,23,26,27,57,64) 이 제의적이고 사법적인 배경으로 여호와의 심판과 보호를 희망하고 있는 이 시들에게서 고대의 한 사법절차, 곧 범죄 행위에 대한 여호와의 판결을 보여주는 제의들과 제의 행위들을 인식하고 있다. 하나님은 제의 절차를 수단으로 하여 인간이 의지할 수 있는 마지막 호소처로 활동하신다는 것이다.
궁켈과 모빙켈의 시편 연구는 예언 현상과 더불어 역사서들의 형성을 기초하는 제의와 경건의 기초 작업의 증인으로서 새로운 중요한 위치가 되었다. 예언자?지혜자?역사가들의 행위에 배후에 놓였던 언어와 열망을 예증하는 것이다. 시편은 성경의 중심에 놓이어 중심역할을 하면서 종교적 발달을 파악할 수 있는 본질적인 배경 막을 제공한다.
물에 대한 연구로서의 양식비평뿐만 아니라 성서적 문학양식의 발전과정(history of forme)이 중요시된다. 성경적 소문학 단위에 대한 “삶의 자리(Sitz im Leben)이다. 낭만주의자인 Johann gottfried herder(1744~1803)는 역사에서 실제에 대한 인간의 체험을 직관적으로 이해함으로써, 구약의 시적인 장르에서 풍부하고 다양하게 표현, Vom Geist der Ebraischen poesie(1782-1783)에서 언급하여 어린이와 같은 영혼을 가진 자만이 하늘 왕국의 심오함에 들어갈 수 있다는 감정, 느낌, 상상, 그리고 자연과의 교제에 대한 낭만적인강조를 하고 있다.
노트는 Gunkel에서 출발하여 구약성서를 자체 안에서 이해하려고 시도하는 Wellhausen의 계획을 새로운 방식으로 회복하여 이스라엘의 실체 체험에서 독특한 무엇인지를 파악하려하였다. 결과적으로 그는 통찰력의 시작을 추적하는 전승사적 접근의 관점의 이야기라는 문학적 장르가 개입되고 이에 주제를 등장시켜 물이 필요불가결로 등장하면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갔던 대장정의 이야기가 주요소재가 되게 하였다. 이스라엘 전체의 대상은 민족들의 공통점과 더 나아가 이스라엘 민족과 전 인류의 구원이라는 커다랗고 위대한 하나님의 뜻의 구속사와 구원의 역할에 관심을 기울인다. 집합인물에 관심을 가진다.
문학양식만의 관점을 넘어서서 제기되는 관심은 물과의 관련된 연구는 궁극적으로 “따라서 걸어야 할 길”44)의 관심사이다. 성서의 미학적이고도 예술적인 요소를 넘어선 관심요구45)는 물에 대한 연구사는 첫째 지리적 조건으로서의 물로 둘러싸인 이스라엘의 지리학적 관심이다. H.L.Hurlbut가 그의 『A Bible Atla』46)에서 물길을 제시하고 있다. 이 희철은 그의 『지리로 본 성서의 세계』47)에서 물길로 연구하였고, 권 혁승의 『성서지리』48)에서는 물의 급수원과 어원까지 언급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이스라엘 역사와 더불어 제시되는 자연지리는 이스라엘 땅에 대한 보호받는 지리로서의 선택성을 강조하여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이어지는 역사적 사실의 수로가 된다.
물에 대한 신학적 문학적 이해에서의 연구사는 물이 창세기 첫 장부터 제시되는 “땅이 혼돈하고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이 수면에 운행하시니라49)에서 구체적인 하나님의 신50)이 운행하시는 하나님의 땅51) 에 대한 물길이다. 이스라엘이 단에서 브엘세바까지52)라는 특별히 한정되는 물의 사역(대하 30:5)은 영적 이스라엘 백성들만이 먹어야 할 물이기에53) 물길을 만들어서라도 먹어야 하는 물리적 생명수뿐만 영적 생명수로서의 물의 사역이 된다. 이 때문에 성서언어가 제시하는 회화시적 은유의 물54) 연구사는 황금율에 대한 연구가 되게 한다.
천하의 물이 모인 것이 바다라는 성서어휘의 제시함에도 불구하고 죄씻음의 영적 의미보다는 바다에 대한 연구는 단지 바닷물이 파괴와 멸망을 일으키는 물55)이라고 연구되었다. 그러나 Weiser는 예루살렘의 강물은 축복을 불러일으키는 물이라는 지적을 하였다. 성서언어가 제시하는 바다는 복수의미인데 마소라 히브리어 본문(출 14,16.21)에서 기적이 일어난 바다를 고유지명 없이 단순하게 "바다"로 불러 한 곳만을 지시하는 바다의 단수로서 제시된다. 히브리어로 얌(yam) 또는 얌 수프( yam suph, 갈대바다)라 한 성서언어에서 복수 바다와 단수 바다에 대한 뚜렷한 구분을 하고 있다. 그러나 본 논문의 중요방향인 천하의 물이 한 곳으로 모인 바다의 사역이므로 복수 바다????야밈에 더 관심을 기울이고 이에 대한 연구사를 찾게 된다. 물의 복수격인 바다에 대하여는 연구가 선행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천하의 물이모인 바다가 제시하는 거대한 양의 죄 씻음에 대한 연구가 있게 된다.
단수의미의 바다는 역사비평의 중요한 안내자이자 생생하게 살아있는 성서언어의 해석이 되기도한다. 그러므로 칠십인역도 얌과 일치하는 탈랏사(바다)로 번역하였고56) 신약 사도행전(7:36)은 "엔 에뤼트라 탈랏세"라는 홍해 바다 안에서라는 스테판의 설교내용에서와 사도 바울은 "바다 가운데로 지나갔다"(고전 10,1-2)고 표현하여57) 히브리어 마소라 본문에서 "갈대바다"로 칠십인역에서 "홍해바다"로 번역(출 15,4 : "그가 바로의 병거와 그 군대를 바다에 던지시니 그 택한 장관이 홍해에 잠겼고,...)한다. 그러므로 이 얌과 야밈의 구별은 물의 단수인 얌 수프(갈대바다, 마소라)가 칠십인 역에서 "헤 에뤼트라 탈랏사"(홍해)로 번역되어 얌(바다) 옆에 제 2의 바다기적의 장소인 얌 수프, 갈대바다가 칠십인 역에서 "홍해" 바다로 번역된다.
현 수에즈 운하 지역의 쓴물 호수인 갈대바다는 칠십인 역 번역자가 쓴물호수 갈대바다를 희랍어로 "홍해바다"로 표현하여서 1. 고대 사람들은 넓은 호수를 "바다"로 불렀고 2. 히브리인에게는 쓴물호수가 헬레니즘 시대에는 수에즈 만 홍해를 지척에 둔 홍해와의 근접함으로 인해 홍해와 연결해서 불러졌을 가능성이다. 번역자의 상상과 그런 지역사람들의 특유한 명명을 수용한 데서 왔던 불확정성에 기인하고 있게 된다. "홍해바다"는 홍해와 가까 왔던 갈대바다일수도 있다. 현 수에즈 운하는 홍해 바다와 연결되어 있음으로 인한 고대 사람에게는 홍해와 지중해를 관통해서 해양경로를 단축시켜 실리를 추구하려는 꿈이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쓴물호수 갈대바다는 고대인의 꿈이 담긴 홍해와 지중해(대해)와 동일한 바다로 불러졌을 것이다.
한편 물 그 자체의 아름다운 의성어와 의태어에 관한 연구는 시편58)의 물이 갖는 특수한 문학적 관점인 의성어와 의태어가 동원된 이미지에서이다. K. 사이볼트는 『시편입문』59)에서 물의 의성어법을 통한 여호와의 임재가 표출된다고 연구하였다. 버나드 W. 앤더슨은 『구약성서의 이해』60)와 『시편의 깊은 세계』61)에서 물의 의성어법을 통한 여호와의 소리를 확인하고 있다. 에모토 마사루의 『물은 답을 알고 있다』1??62)권에서는 여호와가 만드신 물의 신비를 깊이 관찰하였으며 『폰 라드의 구약신학』에서는 폰 라드의 ‘성서이해?가 바로 물의 이해임63)을 역설한다. 시편의 문학양식이 갖는 물의 리듬 확인은 본 연구의 리듬의 질서를 높이연구함에 기여하게 될 것이며 하나님을 알게 되는 물의 깊이와 높이가 바로 황금율인 물과 하늘의 수평성과 수직성에 대한 연구로 이어질 것이다.
물이 갖는 생명의 상징은 하나님 말씀으로서이며 이 연유는 물이 일차적으로 살아있는 모든 것들의 특징이기 때문이다. 구약성서에서의 물들64)은 영적 생명으로서도 이해되어 이미 구약에서도부터 영성 즉 성령의 임재가 신약까지로 이어지는 예시를 가지게 된다. 이 점은 구약성서와 신약성서와의 유기성이며 구약에서의 지리적 위치를 가진 샘과 강의 수직성과 수평성 그리고 바다와 나날의 성서언어적 신비성, 그리고 백성과 말씀으로서의 물의 신비성을 드러낼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12아들의 수리 개념부터가 벌써 문학성으로 접근되는 성서언어의특징때문이며 이 12아들이 네 강의 발원에서부터 시작하여 강화되는 의미의 12지파와 12사도와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막연한 수리개념이 아니라 강과 그 긴밀성으로 놓여지고 그 깊이는 샘, 우물의 깊이로 문학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안에 갇힌 수사학으로서의 문학적 연구사가 있게 된다.65)
성경의 문자적 영감설은 물의 상징성으로서의 진리에 대한 연구이며 이 표협법 자체가 물의 흐름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알고 잇는 가장아름답고 감동적인 언어를 사용으로 하여 물의 문학이 갖는 성서언어의 아름다움을 연구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성경의 일반적 연구보다 훨씬 더 타당한 것이다66). 그러므로 구약에서의 성령과 또는 구원에 관한 문제는 신약과의 단절성이 아니라 구약에서 신약에서의 사건결성에 대한 연결성이 존재한다는 관점67)이며 이에 대한 연구는 바로 성서언어접근연구의 필요성이 된다.
그런데 물에 대한 쌍수와 단수의 구별되는 성서언어는 그 구체적인 예시로하여 원래의 성서언어 물 쌍수와는 다른 단수로서의 성서언어가 제시된다. 구체적으로 바다의 경우 그런데 이스라엘이 광야로 들어가기 전 어느 바다를 건너서 광야에 도달했는가에 대한 연구는 물의 단수성서언어가 제시하는 역사성으로서의 가치이다. 이 실제적인 예시는 성서가 역사성에 근거해 있다는 연구사가 되게 한다.
가나안에 들어간 경로가 1)첫째는 지중해 멘잘레(Menzaleh) 호수를 건너 질루( Zilu, Tjaru) 해안 도시를 따라 쓴물호수 쪽을 거쳐 수에즈만이 있는 홍해 바다가를 지나 신광야( Wilderness of Sin)를 거쳐 남동 쪽 시내산 호렙산에 머문 후 아카바 만의 에지온 게베르( Ezion-geber) 항구도시를 지나 "가데스 바르네아"에 도착하는 경로라는 관점이다.
2)둘째는 지중해 멘잘레를 건너 팀사(Timsah) 호수 주변에서 "수르" 광야를 지나 북쪽 시내 산 제벨 헬랄( Jebel Helal)에 머문 다음 아즈몬과 하자르 앗다르를 지나 가데스 바르네아(므리바)에 도착하는 경로이다.68)
셋째는 이스라엘인들이 비돔(숙곳에서 약간 남서쪽에 떨어진 도시)에서 출발하여 지중해안 시르보니 호수를 건너 블레셋 방향으로 올라가다가 방향을 남으로 꺾어 가데스 바르네아에 도착하는 경로이다(출 13,17-18.20, 출 14,1-2.21-290).
이들 경로는 물의 흐름이 되며 S. Herrmann은 지중해 연안에서의 바다기적을 받아드려69) 기적이 일어났던 바다의 3 곳 가설들을 제시
1. O. Eissfeldt를 따라 지중해의 시르보니 호수
2. W. Helck( ThLZ 97, 1972,182 쪽) 는 현재 수에즈 운하 지역에 있는 쓴물호수를 갈대바다
3. 베두인 전통에 의하면 제벨 함만( dschebel hamman) 지경의 홍해 바닷가를 기적의 장소로 보는 견해
하고 있지만 갈대가 존재하지 않는 점에서 혼란을 가져온다. 바다의 기적이 일어났던 장소는 지중해(멘잘레 호수나 시르보니 호수70) 또는 현 수에즈 운하 지역 쓴물 호수(갈대바다) 두 개의 지역으로 압축되면서 A. 출애굽후 광야길 애굽인의 추적을 두려워했던 이스라엘인들은 한시 바삐 애굽 영토를 벗어나 그들의 손이 미치지 않는 광야 로 빠져나가야 함으로 어느 방향을 잡아 광야로 나아갔던가 ? 아니면 광야체류에 대한 광야전통에 보면 이스라엘인들은 시내산 호렙산에서 십계명을 받고, 더러는 심판받고, 더러는 구원을 얻어 모세를 따랐다고 한다. 그리고 가데스에 모여 군대를 준비해서 에돔과 동부 요르단 쪽으로 공격해서 올라갔던 부류와 네게브에서 직접 유다 남부로 돌입해서 북상했던 부류가 있다. 따라서 북부방향과 남부방향의 두 개의 커다란 광야진군의 경로가 들어나게 된다. 첫째방향은 지중해 연안 시르보니 호수를 건넌 다음 블레셋으로 진군을 포기하고 수르광야를 지나 가데스를 거쳐 미디안 광야를 지나 북상해서 모압 땅 비스가로 향하는 길( 출3,17;14,1-2.16.21-22 등)로 숙곳에서 출발 멘잘레 호수를거쳐 수르 광야를 관통하면서 시내 산(제벨 헬랄)에 머문 다음 가데스 바르네아를 지나 호르마 까지 올라 갔다가 진광야로 내려 오는 과정( 출 15,22;16,1;민 33,11)이다. 둘째방향은 남부방향인데 멘잘레 호수 혹은 갈대바다를 건넌 후 시내반도 신광야로 내려와 호렙 산에 머물다가 다시 북상하여 가데스 쪽으로 가는 과정이다(출 15,22-27.16,1;17,1;민 33,11.12 등을 참조).
이와 같이 이스라엘의 광야진행은 출애굽 서술과 직접 연결되어 있고 전체적으로 출 15,22-19,2; 민 10,11-21,20에 서술되어 있다. 그 옆에 민 33,1-49에는 거류지 목록이 상세하게 추가되어 있다. 그러나 가데스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장소는 확실하게 국한할 수가 없다. 그럼에도 오경서 JEP에 흩어져 있는 지명들을 연결하면 다음과 같은 여행 지명 안내기가 드러난다
바알자폰 비하리오트(출 14,2 P); 바다(출 14,2.16), 갈대바다(출 15,4.5-22,
여기서는 바다와 갈대바다가 한데 섞여 있다. JEP). 수르광야(출 15,22 J), 마라(출 15,23 J ); 엘림(출 15,27P); 신광야( 라호대쉬 하셴니, Sheni, 출 16,1 P); 라피딤(와디 레파이드, 출 17,1 P); 마사와 므리바(출 17,7 J); 시내광야( 미드바르 시나이, 출 19,1.2 P); 바란광야( 민 12,16 P; 13,3 JE); 가데스( 민 13,26 ,과일이 맺는 땅), 호르마(민 14,45JE); 가데스( 민 20,1 P, 미드바르 친(진) ), 호르 산(민 20,22 P), 호르마 (민 21,3 JE); 여기까지 우리는 개별적인 도시 보다는 여러 광야들을 종합적으로 볼 수 있다: 수르광야, 신광야, 시내광야, 바란광야, 진광야
이런 광야들은 열흘 내지는 달포 정도 걸리는 여행길에 불과해서(신 1, 2, 왕상 19:8 ) 석달이 걸리는 길이기도(출 19:1) 하지만 잠시 지나가는 체류지이다. 진광야 동남쪽의 아라바 광야( The Arabah)는 에돔 주변지역으로 호르 산(민 21,4 P); 오봇, 이에 아바림(민 21,11), 세렛 골짜기(민 21,12), 아르논 건너편 브엘(와디 에트 테메드(민 21,16), 맛타나( 마데바의 남동 쪽, 민 21,19); 그 다음으로는 모압지대를 통과해서 비스가 산 쪽 나할리엘, 바모트(민 21,10-20, P)이다.
이런 지역들은 강들과 냇물들을 끼고 있는 지대이고 숲과 강물, 초원지대와 실과와 나무들이 울창한 곳이다. 결코 물 한 방울 없는 광야가 아니라, 사람들이 쉬고, 예배하고, 먹을 것이 있는 고장들이다. 서부 팔레스틴 보다 비옥하고 나무가 많은 동부 요르단 지대이다. 그러나 단지 이스라엘에게 약속되지 않은 땅이기에 이곳은 광야이지, 결코 물없는 토박한 들판은 아니라는 점이다. 오아시스, 목초지가 있는 지역이다.
민 33장은 P자료로서 매우 상세한 여행 거류 목록을 주고 있고 JE 와 D 자료가 광야체류지를 역사적인 서술로 보존하고 있지만, 개별적으로 결합되지 못한 지역저통에 제한된다. D 자료는 광야전통을 최초로 입증하면서 지명들을 열거하여(신 2,7;8,2.4; 29,4; 수 5, 6 등)느 9:21, 시 95:10절에서 받아들여지고 있다. 암 2,10;5,25에서 광야 40년도 아모스의 것이 아니라 신명기적 역사가의 편집층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성서언어가 제시하는 물의 단수격은 구체적인 역서기록이 되는 동시에 물의 역사가 된다.
물에 대한 신학적 문학적 이해의 연구는 아담에게 집중된다. 마지막 아담과 첫 아담이 문제시되는데 첫 아담은 집합적 인물라는 관점이다. 이 학설은 The Facit가 1655년에 Isaac de La Peyrere's Prae-Adamiten에서 지리학적이고 연대학적인 데이터를 사용하여 성경을 깊이 있게 연구(롬 5:12_14) 한 후 아담을 이스라엘인에 대한 집합적 자손이라 하였다. ② 물에 마음이 비추이는 사역이어서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71)는 말씀의 통시성으로서의 연계성은 물에 마음이 비취이면 얼굴이 서로 같은 것같이 사람의 마음도 서로 비취게 되는(시 27:19) 영적 사람의 연구가 된다. 물을 되어 그 분량을 정하시며(욥 28:25~28) 비(1653 ???? D.NMS 관.명남단 비를 rain72)-슥 14:17) )에게 명령하시고 주를 경외함이 곧 지혜요 악을 떠남이 명철이 되는 물은 지혜와 명철이 되는자에 대한 사람의 집합적 의미가 된다. 첫 아담 문제는 서양기독교주의에서 강하게 크로즈업 된(Scholder, pp. 98-103)인물이다. 정교는 아담을 지성주의에 얼굴로 내세웠고 후에 둘의 첫 아담과 마지막 아담을 지적하여 첫 아담 보다는 마지막 아담에게 진실성을 부여하고 있다. 첫 아담에 대한 문제는 새로웁게 성경을 보아야하는 폭넓은 지평을 열어놓은 것이라고 하고 있다. jean Mabillon는 대수도원 생활문제에서 the Abbey de Sainr-Germaine des Pres 의 the Acta Sanctorum (1668)의 볼륨 1에서 “더 높은 지도자의 역사연구는 진실한 사랑이어야 한다”고 언급하였고 Mabillon은 역사적 방법으로 고대 교리들의 데이터의 의미를 벗어났다.73)
모세의 경우도 노트는 모세를 이스라엘 전체의 운명에 더 중심을 두어 모세가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 것은 그의 잘못이 아니라 공동체의 잘못이라는 점이다. 때문에 모세를 집합적 인물, 즉 가공의 주인공으로 보게 된다. 이러한 관점은 물의 사람 즉 갈대상자인 연약궤74)를 탔던 모세와 관련한 전승사적 관점에서의 접근은 Richard Simon이 제공한 Histoire critique du Vieux Testament(1678)의 전승사적 기원75)으로 보고 있다. 모세 저작설을 부인을 발전시킨 Julius wellhausen(1844-1918)의 역사비평지속과 Simon의 역사비평학적 비전은 제한적으로 실현된다. 자료비평관점에서 문학적인 자료(원전문서J, 문서적탐구E, 문학적테두리P)학설은 Wellhausen이 이스라엘 전통의 역사는 왕정과 함께 시작된 것으로 본다.
노트가 제시하는 문학이전의 시기에 대한 물의 전승사적 역사성 연구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대한 구체적인 물의 리듬으로문학이전시대의 연구의 중요 원동력은 Wellhausen과 동 시대의 대가인 Hermann Gunkel(1862-1932)에서 오히려 제공된다.
성서언어가 가지는 문학적 특이성은 수리개념에 몰두하는 일이다. 이에 대한 연구는 E.W 벌링거76)가 게리트리아의 비밀이라는 부제를 붙이고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수리적 계획을 갈파하려하여 책 중에 책이라는 영감을 알아내려 하였다. 하나님의 사역에 나타난 계획과 하나님의 말씀에 나타난 계획과 숫자가 나타내고 있는 영적 의미를 수리별로 구분하여 성경상에서의 출처를 일일이 밝히고 있다. 이러한 연구는 자료를 제시하는 중요한 초점이 되기에 충분하다. 숫자가 나타내고 있는 영적 의미를 그는 하나님으로부터의 계시77)라 보고 신약을 주로 연구하되 구약과 신약을 연결하고 있다..수리의 다양한 접근의 무한성을 열어놓아 78)연구하게 한다. 본 연구에서는 하나님의 영적 메시지를 주워보고자 한다. 이는 보다 적극적인 센텐스의 기호수리에서 통하여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표시한 제2의 숨겨진 언어라는 관점에서 특히 생명에 부활에 관련된 3과 4 그리고 이들의 황금율 리듬은 부활상징이기 때문이다.
-
댓글 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