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예문학교회(이영지poetclasschurch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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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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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고또알리고
운영자 2007.6.29 조회 989

                                                                                     이영지

                                                                                     문학박사,  영예문힉목회교회담임목사, 시조시인

                                                                                      저서 한국시조문학론

                                                                                              이상시 연구     

                                                                                              시조창작리듬론

                                                                                              시조문예미학

                                                                              창조문학대상수상

                                                                            추강시조문학상 수상 

  •                                                         한국창조문학가협회사무국장

  •       서울기독대학교 신학대학원 PhD 재학


     
     
     
     
     
    작성자  이영지 조회수  1
    E-Mail  lyji@poetclass.pe.kr 웹사이트    poetclass.pe.kr
    제목   최규철목사 원로추대식에 부쳐 
     
     
     
    연지곤지  바른  얼굴의  예수님 신부가  되어  하나님  사랑으로  주님과  함께  한지도  엊그
    제  같은데  이제  하나님이  지명하여  주사  새  예루살렘  지권을  대행하여  오늘  이렇게 
    원로  목사롤  지명하여  주심을  하얀옷으로  받나이다
    아브라함이  열국의  하비되심을  믿음으로  받는  아들이  되어  꽃으로  얻은  우리  사랑하
    는  장로님들과  권사님들과  성도님들의  사랑  속에  기쁨의  눈물꽃으로  얼굴이  온통  빛나
    나이다 
    주춧돌로  감돌아  들며  밤낮으로  엎드리다  이제  원로의  하얀돌로  앉았나이다 
    구름으로  가는  세월을  붙잡아  열두  돌을  기념하여  이  성전에서  날마다  제단을  쌓아 
    이렇게  좋은  원로의  선물  주시고 

    노오란  햇살  더듬어  꼭꼭  다듬어  주신  이  경작지에서  추운  겨울  속이  허한  이들에게 
    따뜻한  말씀으로  소박하여 
    안믿던  이들이  쌓았던  벽돌담을  헐게  하시고 
    청지기로서  주신  이  영신  교회에서  자유와  기쁨과  눈물  범벅으로  오늘  하나님  앞에  감
    격하고  있습니다
    말씀만으로  사랑하는  사모님과  공주와  왕자들을  주시고  뒤척일수도  없는  세월의  꿈
    을  여기에서  담대하게  삭게  하시고  담임목사로서  다듬은  손끝  어느것  하나  하나님의 
    보살핌이  없는게  없습니다 
    밝고  맑은  푸른  하늘에  가득  찍히는    목사님의  발자국  때로는  그  울부짖음의  목성처
    럼  거칠게도  하셨으나 늘  건강주시고  영신교회  교인들이  쓰는  이력서  제일  앞줄에  적게  하시고  바다의물을 
    퍼담듯  한량없는  은혜의  눈물로  이  시를  바칩니다 
    2004.  12.  19  
     

    편지

    새벽기도.1156

     

    받고픈 네 편지가

    오는 날 나는 묶여

    가슴과 두 손마저 꽁 꽁 언 안타까움

    편지가 두 손떨림에 보라보라 얹힌걸

     

    묶인 채 그 편지를

    눈으로 바라보다

    놓여놔

    이리저리 가로로 새로맞춰

    밤샘의 샘가에 앉아 눈물보라 맞추면

     

    꿈에서 편지들이 글자의 순서대로

    절절이

    읽어주며

    울면서 하얘지며

    그리기 엉금엉금

    보라보라 맞추면

     

     

     

     

    잔쥬에서 온 전화

    - 새벽기도.984

                                                              

    에요 

    여보세요

    눈물의 사람이요

    못보아 너무 울러 진주의 꽃다발이오

    전화를 받아봐아요

    주님이오

    에요

     

     

     

     

    꽃잎차

    - 새벽기도 .1095

     

    그대가 보고싶어

    차 안에 앉는다

     

    밤 내내 나폴나폴 떨어진 꽃잎으로

    꽃차를 만들어 놓아

    새벽으로 앉는다

     

    그래도 보고싶어

    앉는다 그리움에

    오 이미 복사꽃뺨 새벽의 꽃잎차는

    파르르

    팔랑팔랑손

    약속어음

    꽃잎차

     

     

     

    매화촛불

    - 새벽기도.1096

     

    매화비 돛을 단다

    촛불을 달고 온다

    잰 걸음 환한 너의

    북밝힘

    점령당한 이정표

    바로 코 앞에 닻 내리며

    오.는.중

     

    들판이 날개 단다

    희디흰 너의 안에

    가슴을 태.우.는.중

    꽃비다

    매화 홍역 ]

    촛불에 하루종일 타

    매화비로

    오.는.중

     

     

     

     

     

     

     

     

     

    동백꽃

    - 새벽기도.1100

     

    섬이야

    삼월의 섬

    동백꽃 덩어리야

    그 파란 숨을 내 쉰

    숨결이 예까지 와

    꽃망울 터트리어서 꽃잎붉은

    소릴 내

     

    봄이야

    보고싶은

    하늘꽃 덩어리야

    열리는 하늘자락

    숨결이 예까지 와

    봄 속을 터트리어서 꽃잎붉은

    소릴 내

     

    숨소리

    터널이야

    목마름덩어리야

    새 봄의 하늘눈섶

    숨결이 예까지 와

    동백꽃 머리기름의

    기다림을 품어내

     

     

     

      

     

     

     

     

     

     

     

     

     

     

     

     

     

     

     

     

     

     

     

     

     

     

     

     

    모세오경
                                    

     

                                                                                                                                    이영지

    1. Tolah가 무엇인가를 생명 사상과 관련하여서 논하시오.

     

    토라Torah는 원래 이것의 동사형인 Yarah라고하는 말로 부터 나왔다. 토라는 오경을 가르키는 말로 율법, 혹은 교훈, 혹은 가르침이라는 말로 번역된다. 영어로는 Law, Teaching, Instruction 등으로 번역된다.  흔히 yarah라고 하는 말은 BDB에 보면 가장근본적인 의미가 던지다 라는 뜻으로 이는 여호수아 18장 6절 등에 보면 어느땅이 자기지파의 땅인지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서 점쾌를 던지다, 제비를 던지다 등인데 아브라함의 경우 상수리나무 갈림길에서 어느길로 가야 생명의 길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을 물었으므로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사 말씀하신대로 나아간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여호수아 18장 6절에서 보이는 아브라함의 후손이 그 땅을 차지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하나님 즉 야웨의 뜻이 어디에 있는 것인지를 알게 된다. 더 크게는 이스라엘 백성이 어느길로 나아가야 생명의 길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인지를 알리기 위한것임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볼때 토라는 생명의 길의 가리킴의 축적이라고할 것이다.
      이렇게 토라가 생명의 길을 위한 가리킴이 되는 것은 신명기 30장 20절에 보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해야 할 것이며 그 말씀을 순종해야 할 것이며, 또 그에게 부종해야 할 것(달라 붙어 있는 것)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이것이 야웨께서 네 열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리라고 맹세한 땅에 들어가 살 때에 생명이 되고 장수하기 때문이다.  창세기 15장 1절에 아브라함이 조카롯을 구한후 소동왕이 제의해 온다. 그러나 모두 거절한디. 그 때에 "하나님은 아브람아 두려워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라" 하였다. 하나님 자신이 상급이시다. 나에게 상급을 주신다. 하나님은  상주시는 분이시다. 믿음은 하나님이 계시는 곳이다. 은밀한 중에 계신다. 끝까지 상주심을 믿는 것이다. 달콤한 말이나 인간의 인정이 아니라 달콤한 것을 거절하는 데서 오는 것이다. 토라의 의미는 이처럼  야웨의 뜻이 어디 있는지를 정확히 알아서 생명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는 뜻이다.  이러한 직접 계시와 연계하여 출에굽기 19장 이후에서의 신명기까지의 율법집에서 하나님의 대언자 모세에 의해서 기록된 가리킴으로서의 토라이다.
      성경 아니 구약에서의 중심사상은 생명사상이다. 신구약을 연결하는 중심사상도 생명이다.  신명기 4장 1절, 5장 31절, 8장 1절 11장 26절에서 28절까지에서와 요한복음 3장 16절에서 예언과 더불어 오신 에수님이 생명을 우리에게 얻기 위한 것임을 말하고 있다. 이러한 생명을 얻는 방법은 신명기 8장 1절에서 보이는 바와 같은 내가 오늘날 내게 명하노니 모든 명령은 너희는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살고 번성하고 여호와께서 너희의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얻으리라고 하신 말씀그대로 이룩되는 것이다.
    이 생명사상은 바로 살고 싶으면 살길을 택하고 죽고 싶으면 죽음의 길을 택하라는 아주 극명한 선택의 길을 제시하는 것이다. 요한복음 3장 16절의 말씀처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이다. 따라서 하나님을 믿음이 곧 생명의 길이 되는 것이다.

    2. 오경연구사와 오경신학에 영향을 미친 학자에 대해 전반적으로      기술하시오
      
      모세 오경에 대한 연구는 모세의 저작설에 대한 의구심으로부터 출발하였다. 프랑사의 루이 15세의 주치의였던
    1. 아스트뤽(J.Astruc, 1684-1766)에의해서 처음 두개의 성서가 모여서 하나의 성서를 이  루었다는 두 자료설 주장한다. 그는 신명기에서 야웨와 엘로힘이라는 두 개의 이름이 나타나는 것을 발견, 야웨라는 이름을 가지고 나타나는 문장들을 J(Jehovah)문서 엘로힘이라는 문장들을 E 문서라고 명명하였다. 
    2. 벨하우젠(J.Wellhausem)은 당시학자들이 연구의 진전을 보아 E1, E2중에서 E1이 재사장 문서E1으로 고착되게 하였다. 따라서 JEP문서설이 삼경설이 되었다.
    3. 독일의 구약학자 드베테(W.M.de Wette, 1780-1849)은 그의 학위 논문에서 신명기와 열왕기하 22~23장에 나타나는 율법문서와 그 율법문서에 기초를 두어 단행된 요시야의 종교개혁 사이에 내용이 일치됨을 밝힘 -이후 신명기는 요시야의 개혁 때의 문서인 것으로 연대가 잡히게 된다. 따라서 현행 학자들 대부분은 이 사실상 원신명기(Proto-Deuteronomy)와의 동일성의 견해를 받아들인다.
    4. H.Gunkel과 양식비평
      궁켈(H.Gunkel)은 성서 안에 있는 각각의 문학단위 양식들이 타 문화권에도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 전설, 야사(folk tale), 혹은 시편들이 어떻게 특유한 양식을 갖추고 있으며 이들이 어떻게 분리되는 가를 탐색, 문학단위들이 기차의 차량처럼 연결되어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발견, 특히 성서의 야사가 타 문화권에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였을 뿐만 아니라, 궁켈 이후에는 독립된 작은 이야기나 단화, 에피소드 등이 연결되어 하나의 긴 이야기를 이룬다는 점을 발견,  궁켈은 이야기들이 고착되기 전에 구두로 전해져옴을 발견하고,  성서의 역사는 단순히 성서가 쓰여진 연대까지 반으로 제한 되는 것이 아니라 그 보다더 훨씬 이전까지로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그의 주장은 인간의 개개인의 이야기는 소위 삶의 정황이라는 것이 있다고 본다. 어떤 이야기나 노래가 쓰여지고 있던 정황을 말한다.
    5. S.Mowinckel의 제의
      모빙켈(S.Mowinckel)운 규역성서의 전승들이 축제를 통해서 전해졌다고 주장
      추수감사절-일년에 세 번 하나님의 얼굴을 뵙기 위하여 중앙성소에 순례를 하되 출 23장이나 수 24장의 세겜회의나 삿 21장의 실로의 축제나 삼상 1장에 측제 특히 바알의 생명의 신이다. 바알신이 비를 몰고 와서 대지의 신 아세라 에게 비를 뿌리면 이 세상이 온통 푸른 생명의 지척이 되는 이러한 비유의 축제는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점령한 후에는 더욱 강한 신이었던 야웨를 위한 축제로 바뀐 것이다. 이러한 변이는 바로 모빙겔이 포착하여 제의와 전승과의 관계의 중요성을 역설하게 된다. 오경이나 역사서는 하나님 말씀 선포의 메시지, 혹은 케리그마라고 하는 것과 관련짓게 되었으며 시편 등은 찬양이나 기도문, 낭송문, 또는 제의 기도문 등과 관련하여 해석하게 되었다. 모빙벨은 이 외에도 더 많은 신학적인 개념들을 예배 안에서 재현된 신년 축제를 애웨의 제왕 즉위식에서 찾았다. 예를 들면 심판의 날로 야웨의 날을 관련지었다.
    6. 알트(A.Art) 율법의 삶의 정황이 무엇인가에 관심을 가지고 ① 구약의 법이 고대 이스라엘인들의 삶 어디에서 사용되고 있다가 구약성서의 세계로 들어 왔는가 ② 그 법들은 과연 당시 사회에서 어떤 기능을 수행하고 있었는지 등을 밝혔다.  그는 두개의 법으로 구분하였는데 그것은 절대법(Apodeictic Law)와 판례법(Casuistic)이다. 절대법은 하나님이 직접 내려주신 법이다. 판례법은 모세에 의해서 중계된 법으롤 계약책(츌 20:22~33)에 드러난다.  이러한 법들은 종교법으로 이스라엘을 고대근동에서 유일한 신앙공동체로 단생시킨 법이다.  조직체의 형성으로 인한 제의와 관련된 법은 농경생활로 인한 필요불가결의 법으로 윤색도 해서 나름대로의 야웨의 법에 비추어서 선별 하여 야웨공동체로서의 생활준칙이 된다. 하늘을 바라보나 땅에서 사는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법은 하나님의 뜻을 구현한다는 의미의 중요성이 존재한다. 
    7. G.E.Mendenhall
      멘덴홀은 시내산 계약사건에 대하여 멘덴홀은 힛타이트 제국(헷족속) 그 봉신국가들 사이에 체결된 계약의 양식과 구조에 대한 연구로 절대법(Apodeictic)이 과연 이스라엘에만 있고 타 문화권에서는 없었는지를 확인하기 위하여 탐색한 결과 구약성서에서 모세가 중재한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맺어진 시내산 계약은 종주국인 힛타이트 제국과 종속국들 사이에 채결된 계약에 비추어서 작성되었다는 결론을 얻었다. 따라서 멘덴홀은 "나는 야웨의 너의 하나님, 노예의 집 에집트에서 너희를 이끌어 내신 분이다"에 대한 재확인이 된다.
    8. G.Gestenberger
      걸슈텐버거는 오경의 명령형으로 되어 있는 문장의 양식이  에레미아 35장에서 나타나고 있는 문장에서의 형식은 다른 모세 이전까지도 거슬러 올라간다는 것을 발견한다. 2인칭 명령형은 바로 아버지가 아들에게 말하는 형식으로 그 기원에 있어서 고대사회에 있어서도 존재하였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이 계명의 형식이 십계명의 형태인 절대 명령형의 법규가 부모가 자식에게 내리는 생존의 비결이 지혜의 문학이 된다는 점이다.
    9. M.Noth
      노트는 오경의 큰 이야기를 구성하고 있는 주제 전승은 출에굽, 가나안 정복 족장들에게 주어진 약속, 광야 여행, 시내산 계시의 다섯가지 전승이 그 기본을 이루고 있어서 이것은 마치 막대 지남철 같다고 보았다. 이 다섯가지의 전승의 기원과 전달은 원래 공통 전승 G가 있었고, 소위 J와 E로 나누어 졌다고 보았다.
    10, G.Von Rad
      본라트는 편집비평에 관심을 기울이고 문학비평 단위로 보아 신학적인 목적을 표현하기 위해 어떻게 배열하느냐에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 큰 문학단위의 구조 배치를 연구함으로써 저자의 신학적 의도를 탐색하자는 것이다.
    11. R. Alter
      동시적과 공시성으로 보는 이 관점은 본문을 구성하기 전에 자료가 되었던 큰 문학단위의 역사적 정황을 규명하고 상징된 정황 속에서 그 본문을 해석하려고 하는 반면 신문학비평의 관점에서 보는 것이다. 이 통시적 연구와 공시적 연구의 필요성은 저자의 의도적 관점이나 고대 히브리문학의 관습을 중요시한다. 이러한 관점들은 새로운 사건의 구성이 단순히 돌발적인 것이 아니라 계획된 구조라는 점에 착안한다.
       이상에서 보아온 바와 같은 오경연구들은 새로운 시각으로서의 그러나 확실한 고증을 잡기 위한 학자들의 관심의 대상이다. 그러나 어떠한 연구이든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크나큰 섭리를 발견하는 인간의 하나님 가까이 가서 더욱 더 하나님의 큰 권능을 체험하는 것이 되리라 본다.
     

    3. 오경의 문서설과 오경가운데 한권의 책을 선택하여 전체적인 신학사상 및 흐름을 논하시오
     
      문서설(Documentary Hypothesis)이란 오경이 저자에 의해 지어진 수많은 단편들의 결집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몇몇의 저자들이 같은 종교적 맥락을 유지하면서 각기 다른 시대에 독립적으로 더 커다란 문서를 저작했다는 개념이다. 이 독립된 문서들이 역사적인 과정을 거치면서 서로 결합되어 현재와 같은 오경의 형태로 이루어 졌다는 이론이다.
     이와 관련하여 창세기 전장을 통하여 보른 전체적인 신학사상 및 흐름을 논하게 됨은  우선 J 문서설로 하나의 긴 이야기로 되어 있는 데에 주목한다. 창세기 1장에서 11장까지 나오는 원역사(primeval)는 천지 창조, 에덴동산 이야기,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 등 많은 이야기들로 엮어져서 이루어져 있다.  이런 이야기들로 구성된 부분을 J 문서라고 하는데 J 문서는 그 특징으로 보아 궁켈같은 이는 J 문서를 그 특징상 민담이라고 불렀다. 우리말로 말하자면 야사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말씀을 듣는 세속적인 삶을 살아가는 청중을 상대로 선포된 말씀으로 그들의 구체적인 삶 속에서의 희로애락의 이야기들을 때로는 풍자해서 때로는 준엄하게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가 없었다면 삶이나 역사도 전해지지 않았을 것이다. J 문서의 특징이 갖는 삶의 질서와 카수토와 같은 학자가 주장하는 드라마틱하고 극적인 생생한 이야기(전설, 무용담, 신화)는 창세기에서 뚜렷하게 드러난다. 
      민담형태로 보는  전설, 무용담, 신화의 아브라함의 무용담, 하나님의 아들들이 인간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결혼하여 고대의 용사를 낳는 이야기 등이 기재된다. 창세기 2장 4절에서 보이는 에덴동산 이야기가 마틴 노트가 보이는 여호수아의 정복 설화, J의 이야기는 창 2:2~4b -3:24-애덴동산의 아담과 하와의 동산에서 쫓겨나는 이야기인데 여호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신 때에 천지의 창조된  대략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어시니 사람의 생령이 된지라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의 동산을 창설하시나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있게 된다. 첫 약속의 실패로 이어지는 이 장은 창세기 4:1~16절에서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로 양치는 아벨의 제사는 받으시고 가인의 제사는 받으시지 않으신다. 아벨은 가인에 의하여 죽게 된다.  창 4:17~26 가나안인의 족보에서 보이는 살인자의 자손이 지속되는 장면으로 사람을 죽이고 그 벌을 칠배나 받는 장면이다. 또한 창세기 창 11:1~9 바벨탑 이야기는 온땅에 구음이 하나이요 언어가 하나이었지만 이에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그날 평지를 만나 거기 거하고 바벨탑을 지으려 하자 언어를 혼잡케하여 그들로  서로 알아듣지못하게 하시게 된다.  창세기 18-19절에는 소돔과 고무라에서 롯이 소돔성으로 가고 아브라함은 그를 구해 준다. 데라가 아브람과 그의 아들 아브람을 데리고 가나안을 향하여 떠나는 장면이 나온다. 데라는 아브람과 그 자부 사래를 데리고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하더니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하였으며 데라는 이백 오세를 향수하고 하란에서 죽게 된다. 이에 아브람의 가나안을 향한 집떠기는 시작된다. 
       E 문서는 Elohim 이라는 신명을 쓰는 본문들로부터 기인하는 명칭이지만 J와 내용적으로는 잘 구별되지 않아서 창 15장에서 시작하여 비교적 통전성이 있는 창 20장(아브라함-사라-아비멜렉의 이야기) 이후 산재되어 나타나며 E 는 창 15장에서부터 시작되어 E 에서 반복된다. 엘로힘이라는 야곱과 라반의 이야기(창 31절) 요셉의 꿈 해몽 이야기(41-41), 야곱이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축복함(창 48장)을 보인다. 이러한 E 문서설은 창 20장 31:11절에서 창 20-12절에서의 도덕적인 성격으로 보는 요셉과 보디발 아내에 대한 승리로 이어진다. 이런 의미에서 문명권 세계에서 발달된 윤리적 개념은 당시 세계의 도덕적 선각자들이었던 8세기 예언자들의 영향을 입은 것으로 본다.
      P 문서설이 갖는 제사장 문서로서 가장 현저한 형태로 성전과 관련되 문서로서의 관점은 창세기 1:1~12:4a에서 노아로부터 아담에 이르는 족보,  창세기 5장에 보이는 노아 계약의 결론부(창 9:1~17), 아브라함 계약(창 17장) 막벨라 동굴의 구입(창 2장), 아브라함의 죽음과 이스마엘의 후손(창 25장) 레위기 전부, 시내산에서의 종 바벨론이나 주변 근동세계의 자연종교가 이들을 신으로 신으로 생각했던것과는 달리 구약성서에는 더이상 신들로서의 역할을 하기보다는 단순히 피조된 물체로서의 역할을 보여준다. 예루살렘에서의 성전이며 예배규정을 다루고 있다.
      J 문서의 케리그마가 세상에서 세속적인 이웃에게 복의 근원이 되는 것이라면(창 12:1~3), P 문서의 케리그마, 다시 말해서 중심 메세지는 종교적 회중 안에서의 축복이다. 이러한 축복은 안식일(창 2:3)로 제사장이 선포하는 종교적인 세계관을 보인다.
      창세기의 전체적 흐름은 택한 백성의 유산과 하나님의 섭리에 의한 체험을 지시하고 첫 계약이 깨어지나 또 생명의 윤리관을 보여준다.  하나님의 섭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가 선택한 백성들을 결코 포기하지 않고 생명의 길로 인도하기 위하여 미래를 향해 지시한다고 하겠다. 


     

     

     

     

    이영지(李英芝)

         미래의 예배                                             
        -문학목회의입장에서                                 이영지


                                
                              1. 미래의 예배
     
        (1)문제의 제기
       이 논문은 문학목회를 통한 미래의 예배에 대한 연구로 개념설정만을 목적으로 하였다.
      문학목회라는 관점에서 미래의 예배는 기독교인 신앙행위의 연속선상에 놓이기에 그 대안에 대하여 본 논문에서는 최대의 관심을 부여하고자 한다. 기왕에 논의되고 있는 사이버라는 개념에 접근, 성경이 곧 말씀, 즉 언어라는 관점에서 그 적극적인 방법제시를 찾을 것이다.
     첫째 미래의 예배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그의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인 미래의 예배자들이 하나님께 존경과 경의와 찬양과 그리고 영광을 드리기 위해  그의 외아들 예수를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말씀하시었다. 즉 모든 미래의 사람,  이들 많은 사람들이 미래에 멀티미디어로 그리고 사이버로 하나님께 존경과 경의와 찬양과 영광의 예배를 드리게 될 것이다.  둘째  "주의 사자가 옥문을 열고 끌어내어 가서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 말하라"는 말씀에 의지한 교회중심 예배의 지속성이다. 
      후자는 첨단기술로 인한 멀티미이어 시대에도 현재 교회중심적 예배를 드릴 수 있다는 긍정적 관점이고 전자인 멀티미디어 예배는 모든 백성이 구원받을 수 있는 점에서 오히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아무도 우리를 대적하지 못하는 예배의 언약을 기초로 해서 하나님과 사람과의 교제하는 삶이 될 것이다.  그 가운데서도 인간이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문학성의 부드러움으로 절대의 기계적 기기 앞에서 문학의 감성으로 접근하는 환경을 만들어 축복의 장으로 만들  수 있다는 뜻으로의 시각이다.
       
       (2)연구사
       미래의 예배와 사이버는 밀접성을 가진다. 미래의 예배라는 개념과 접근되는 '사이버'라는 용어는 성경에서부터이다.  사이버라는 말은 큐베르네테스(          )에서 비롯되는데 그 뜻은 '조정'과 '제어'의 의미를 내포한 조타수(streerman, helmsman) 또는 '선장(captain)' '항해사(navigator)'를 뜻한다. 플라톤은 큐베르네테스를 '조종술'과 '통치술'의 의미로 사용하였고 이 단어가 라틴어로 바뀌어 구베르네테스(guberneres, 통제)가 되었다. 배가 드넓은 바다를 향해할 때 중요한 구실을 하는 조타 장치와 같은 것으로, 헬라어의 큐베르네테스(          )라는 단어는 한글 개역성경에서 '선장'으로 번역되고 있다. 따라서 성경에서의 미래의 예배에 대한 의미의 확장으로서는 당연히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도 동일하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창 1:2)"이다.  인간은 어떠한 경우에도 물 위에 설 수 없다.  그러나 환경의 변화에 관계없이 수면 위를 운행하시는 하나님은 바다를 마음대로 운행하시는 분이고 외아들 예수님을 바다 위에서 걷게 하시었다. 따라서 문학목회의 미래 예배로에 접근은 우리 인간은 하나님께서 부여해주신 마음의 감성적 특성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미래의 예배에 활력소를 넣는 일이다.  사실 "물 위에 걸어간다" 라는 문장은 시의 특성적 언어이다.  시에서는 이 문장이 있기 때문이다. 나와, 예수님과 동일함이 되는 문학에의 접근이다. 즉 하나님께서 불가능을 가능의 세계로 몰입시키는 것에 대한 이해는 문학목회의 특징으로 이야기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 하나님의 영광이 더욱 나타나게 된다. 때문에 미래의 예배도 그 운행의 키를 잡고 운행하시어 우리를 삶의 흉융한 파도에 빠지지 않게 이끌어 내신다는 점이다.  예수님이 땅에서 들린 후에 우리를 이끄시게 될 이 미래의 예배는  '선장(          )이 되시어" 우리로 하여금 사이버상과 또 뭍인 이 땅에서 동시에 두 세계에서 예배드리게 하실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부름 받은 존재로 그의 뜻에 합당한 예배를 드리기만 하면 된다.
      미래 예배에 대한 연구에서 장성영은 제 8일을 미래의 이미지로 해석하여 "여덟은 복음시대나 오는 세계로의 깊은 의미를 숫자를 통하여 전달하였다"고 하였다. 박영철은 미래의 넷티즌은 바벨탑의 저주로 흩어진 세계의 언어를 하나로 묵는 수단(glbal communication)이 된다고 하였으며, 세계를 하나의 언어로 "미래전망 2020년의 한국과 세계"에 대하여 인터넷 세계로 미래 예배의 긍정적 관점을 피력하였다. 이성희는 미래사회와 미래교회의 새로운 현실을 논하였고,  바벨탑을 쌓은 결과로 나뉘어 졌던 세계언어가 인터넷 창으로 하나의 언어로 묶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각기 흩어져 너와 나와 나뉘어 짐을 민망히 여기사 하나로 묶게 하시는 하나님의 작업은 실제 오늘날의 세계언어의 동시통역의 가능성으로 재현되고 있으며 생소한 입술과 다른 방언으로(사 28:11; 행 19:6~7) 서로 알아듣지 못하는 영의 세계는 하나님께(고전 14:2) 합당한 기도를 드리던 예배자들이 받은 비젼의 기적이다.  박종천은 "하나님과 함께 기어라, 성령 안에서 춤추라"고 강조하면서 이 사이버를 드나드는 많은 빈도수가 하나님의 사업을 함께 하는 길임을 지적하고 있다. 성령의 하나됨을 제시한 교회 형태는 평신도중심의 봉사적 디지털형 교회(Service digital Church)로 평신도 중심의 예배인 소형 예배가 있음을 지적하였다. 이점은  바로 여러 다양한 목회가운데 문학목회의 가능성을 제시한 점이 된다. 최인식은 「멀티미디어와 새로운 교회」및 "멀티미디어의 시대가치관의 신학적 이해"에서 ISDN(통합서비스 디지털망;Intergrated Service Digital Network)의 역할과 한국컴퓨터 선교회(KCM;Korea Computer Mission)는  KCMI와 한국종교교회 네트워크(PC;Presbyterian Church of Korea), CUG(Closed User Group)에서 총회 인터넷 페이지(http://www.dacom.co.kr)를 통해 하나님의 사역이 진행되고 있음을 말하였다. 정용순은「21세기 목회와 예배에 관한 연구」에서 성찬을 소홀히 하는 설교중심과 예배회중 참여가 없는 예배, 젊은이들의 교회이탈에 대하여 그 문제점을 제기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연구자들의 지적을 참조하면서 오늘날의 네이버상의 현실성은 "너희 가운데 누가 망대를 세우려고 하면 그것을 완성할만한 비용이 자기에게 있는지를 먼저 앉아서 셈하여 보아야 하지않겠느냐"는 말씀에 따라 기도하며 미래의 예배를 위한 준비의 연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3)접근방법
        ①말씀중심의 미래예배
        ㉠예배
      미래의 예배는 하나님은 영이시니 영원성임으로 동일하시고 불변성이어서 하나님의 영원함은 무한하시기에 미래에도 예배를 주제 하시는 분이시다.    
        ㉡세례
      성서적 세례는 침수세례를 행하는 것이 성서적이다. 사이버가 바다를 상징함으로 성경에서 바다의 장소는 육지와 마찬가지로 같이 의미되어진다. 따라서 이 바다의 상징성은 미래의 의미로 미래에도 침수세례를 받는 것이 성경적이다. 
      ㉢ 주를 기념함  
      주를 기념하는 방법은 성경에 언급되어 있는데 그 장소는 뭍과 바다에서도 성만찬 뿐이다. 따라서 미래에도 성만찬을 시행하여야 한다. 

         - 내게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        사 축사하시고 떼어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        념하라 하시고, 식후에 또한 이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 하는 것이니라
         - 바울이 백부장과 군사들에게 이르되 이 사람들이 배에 있지 아니하면 너희가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 하니 이에 군사들이 거룻줄을 떼어 버리니라 날이 새어 가매 바울이 여        러 사람을 음식 먹으라 권하여 가로되 너희가 기다리고 기다리며 먹지 못하고 주린 지        가 오늘까지 열나흘인즉 음식먹으라 권하노니 이것이 너희 구원을 위하는 것이요 너희        중 머리터럭 하나라도 잃을 자 없느니라 하고 떡을 가져다가 모든 사람 앞에서 하나님        께 축사하고 떼어 먹기를 시작하매(행 27:35).

       뭍이나 바다에서도 똑 같이 행하여져야 할 것은 성만찬이다. 주님의 십자가 구석과 직접적인 연결은 특별히 새 언약으로 말씀하신 주님의 살과 피를 기념하는 성만찬이 있어야 한다.

        ② 자연계시
       미래의 예배 역시 하나님께서 부르신 예배이기에 컴퓨터를 통한 하나님의 예배에 부름 받을 수 있다. 비록 갖가지 사탄의 방해요소가 있으나 인터넷의 장소로 불러주시고 옥문을 열어주신 하나님에 대한 감사와 경배는 네티즌(netizen상에서 인터넷주소로 전 세계인을 향해 말씀으로 주신 하나님의 언어를 만날 수 있다. 인간이면 누구나 갖는 감성과 감동을 전제로 한 통신망이 될 수 있다.  로마가 건설해 놓은 도로를 밟으며 바울이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했듯이 인터넷을 통해서 모든 사람이 하나님께 영광을 문학스러움의 특징으로 돌릴 수 있다. 이 점은  문학목회가 갖는 의미의 확대선상에서 어떤 형태의 예배형식에도 해당되는 일이다. 따라서 미래 예배는 현재의 예배의 연속선상에 있으며 하나님 한 분만을 의지하고 내 일그러진 현재의 상한 모습으로 나아가는 길때 하나님께서 미래의 예배자에게 부족한 점을 채워주시고 구원하여 주실 것이다.   
     
      ㉠ 미래 예배의 팀 -문학적 예배
      하나님의 말씀으로 준비되어진 문학스러움의 예배는 하나님의 영광(사 43:7)과 찬송(사 43:21~2)과 경배00(시 29:1~2)를 하나님께 드리게 된다.  문학을 즐겨하는 사람들이 갖는 미래의 예배는 하나님의 위대하신 언어의 감동스러움을 발견하고 또 언어를 하나님 뜻에 맞게 옮기는 작업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사이버로 들어오던지 아니면 교회로 모이는 방법이다. 첨단적인 현실이 갖는 메마름을 심령을 촉촉이 적셔주는 문학적 감성으로 접근할 수 있다. 하나님의 선한 일(엡 2:10)과 구원(고전 6:20)을 인간은 예배(창 1:26, 28)를 받으시고, 그 예배의 장소는 사이버라는 가상적인 공간이든 아니면 교회 공동체 안에서 감성으로 예배드릴 수 있게 하나님이 하실 것이다. 
      하나님은 첨단적인 컴퓨터 문화생활권을 그의 백성이 그의 말씀을 늘 들을 수 있도록 하시어 하나님의 능력(고전 2:^~10)을 보여 주실 것이다. 흙으로 빚으신(창 2:10) 그의 형상으로 된 자녀들이 항상 첫 예배를 드리게 하실 것이다. 문명의 이기가 발달하면 할수록 이 세상사람들은 인간 냄새나는 향기를 그리워하게 된다. 이 조건을 만족시킬 수 있는 조건은 교회의 공예배와 인터넷과 특수클럽으로 문학적 미래의 예배를 드릴 수 있다는 점이다. 흙으로 돌아 가야할 인간은 시대가 첨단화 될 수록 흙을 그리워함의 짙은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된다.
      ㉡ 미래 교회예배의 주일성수
       미래에도 교회는 여전히 존재할 것이다.
      멀티미디어의 미래예배의 경우에도 하나님께서 여전히 그의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주일성수를 지키게 하실 것이다.  이러한 기쁨에 들게 하실 언약(출 31:13~17)은 인간은 계속 일할 수 없는 생채리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며 다른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자연계시를 주시기 때문이다.  즉 진리를 사모하는 우리의 인간적인 속성은 하나님을 찾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이가 어머니를 그리워하듯이 우리들은 우리들의 보호자를 찾게 되어 있다. 이는 하나님께서 외아들을 안식일에 들어(히 3:마지막)가게 하시어 주인(마 12:8, 히 4:3)을 만드시고 그를 사모하는 마음을 우리에게 주사 그가 우리의 보호자가 되게 하시었으니 돌아보실 보호자가 있는 우리들은 평안한 얼굴을 하게 되는 특징에서이다.
      ㉢ 세례
       이 점은 주일성수를 하게 하는 요인이 된다. 하나님은 보호자의 존재성을 우리에게 알리고 그 징표로 세례(롬 3:3~6, 롬 6:3)를 받게 하신다. 
      ㉣성만찬
     성만찬(고전 10:16~17)을 허락하실 것이다. 컴퓨터로 하나되는 세상을 보여주신 하나님은 교제를 통한 떡과 포도주를 같이 나누는(롬 16:16) 일의 소중함의 일에 참여하는 예배의 환원을 갖게 하실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홀로 살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의 이행으로 교제하며 삶이 성경 말씀(신명 8:3)에 따른 영적 양식을 먹는(요 20:34)일에 소홀히 하지 않게 하시어 그 구원의 표(롬 14:15)로 영화롭게 하여(롬 1:21)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요 3:5)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하실 것이다.  이 마음의 만족스러움은 늘 계속되어질 요인이 된다.

     

     

     

     

    시조에는 음악성과 문학성이 있는데 이 두 개의 양면을 다 충족시키는 것이 3장이다. 문학적인 면에서는 3분이 되는 의미단락에 있다. 이것을 오늘 날의 많은 시조작품에서 보이는 다행과 관련하여 보거나 또는 고시조의 줄글과 연계하여 보면 시조 형태로서의 3행이 바람직한 것이기는 하지만 시조의 조건으로 굳이 3행으로 되어야 하는 이유는 없다.

    따라서 문학적인 측면에서의 3장은 초·중·종장마다 의미의 단락이 다른 데에 시조의 멋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문학적인 면으로 접근시킨 시조 3장의 음악성은 초·중장이 대립의 리듬에 있고 종장은 이에 대한 새로운 리듬의 생성이라고 할 수 있다. 초·중장의 대립리듬은 부정 혹은 투쟁의 대립이 아니라 二而一의 대응적 논리가 되는데 있다. 서로 대립하나 도우며, 서로 구제하며 서로 보충하는 관계에 있다. 이것은 퇴계 철학의 이기설理氣說과 관련시켜 볼 수 있는데 이의 초재와 이의 내재인 기와 깊은 관계에 있다.

    시조의 문학성과 음악성은 별개로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도와 그 뜻을 보충해 주는데 있다. 우선 문학적인 초·중장의 서로 다른 점은 초장에서 초월적인 뜻이나 순수성을 가진다면 중장에서는 현실적이고 사실적인 리얼리틱성을 가진다. 이러한 초·중장의 구분은 한국의 언어가 지니는 특성과 생활습관도 연관된다. 그것은 첫째 나아닌 남을 존중하는 경사상에서 비롯되는데 남을 존중하고 어버이를 만들며 나라에 충성하는 한국적인 경사상은 나보다 남을 먼저 앞세우는 겸손의 법칙이 먼저 초장에서 전개된다.

    때문에 초장에서는 순수한 꿈과 남을 좋게 보려는 겸손이 내재된 일들이 쓰여짐을 근본으로 한다. 이것은 이미 연구하여 본 바가 있는 것으로 초장이 중장과 구분되는 의미상의 특성이 된다. 또한 한국언어나 한국적인 문장의 특징인 대화체에 있는데 이것 역시 대화형식으로도 내가 남보다 잘났다거나 리드하여 간다기보다 능동적인 형식을 취한 보편성을 지닌 초장은 나 아닌 너의 물음에 있다. 또한 남녀의 관계로 본다면 초장은 男의 세계가 된다. 때문에 이러한 특징들을 종합해 보면 초장은 의미가 발마직한 위치에 있게 된다. 이와 관련하여 음악성과 관련시켜 본다면 초장의 一句는 閑雲出苗로 구름이 뭉개뭉개 피어오르는 격조가 된다. 二句는 鳶飛戾天으로 솔개가 높게 날아 오르는 격조이고 三句는 霜風曉月로서 그 높은 곳에서의 고독을 나타내는 격조이며 四句는 殘烟孤燈으로 아주 먼 불빛에 비유된 격조가 된다. 천년의 긴 역사 속에서 우러나온 생활감정이 곧 시조이기에 다양한 측면으로 시조는 그 특징을 가진다. 고시조의 경우를 보면 임금에 대한 내용이 초장에서 전개되는데 이 또한 임과 나 즉 임금과 나와의 관계에서 초장은 임의 장이 된다.

    원래 이 임의 어원학적 발생을 가락국기에서 보면 김수로왕이 그의 왕후허씨를 맞기 위하여 간 곳에서 비롯된다. 가락 남쪽의 一浦口村인 주포(님鏡·님개)에서 유래된 이 님은 오늘날 '님께' '님'의 어원적 발생지가 된다. '님'은 나보다 높고 좋으며 주인이 되는 뜻과 임금의 뜻이 있다. 또한 어전·군자의 뜻이 있다. 그리고 전자의 뜻도 있다. 그리고 전자의 뜻도 있다. 이와 관련하여 초장이 전장이 될 수 있으며 님의 장이 되고 또는 임금의 내용이 담긴 장이 된다. 용비어천가도 시조의 특징이 있는데 첫행은 중국고사에서 남의 이야기 즉 시조의 초장적인 특징이 된다.

    초장의 대립리듬에 있는 중장은 현실적인 장이지만 남보다 내가 낮은 상태에 있어서 어쩌면 이 장은 비극의 장처럼 된다. 때문에 실제 장형시조나 중형시조 또는 사설시조나 엇시조의 중장들이 가장 중장의 그 특징을 리얼리틱성으로 잘 드러내고 있음을 보게 된다. 동시에 중장의 내용들은 꿈에서나 그리는 사랑의 내용이 아니라 보다 실제적이고 가능한 이야기들이 전개되고 있다. 또한 갈등이 있으며 존재에 대한 회의가 있게 된다. 우리말이 지니는 대화체의 특징으로 보면 중장은 임의 물음에 대한 나의 답이 된다. 남녀의 관계로 보면 중장은 女의 세계가 된다. 이러한 특징들을 종합해 보면 중장은 낮은 소리에 해당된다. 이것은 실제의 나의 위치가 낮아서가 아니고 한국적인 특유의 겸손사상에서 비롯된다.

    시조가 민족적 생리와 잘 맞는다고 하는 것은 실제 내가 낮아서가 아니고 낮은 마음의 위대함에 있다고 할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음악성과 연계하여 본다면 중장의 1구는 渺入雲中으로 구름이 아득한 태산을 헤쳐 가는 격조이고 2구는 高山放石으로 산에서 돌이 구르듯이 거침없이 뛰어내리는 격조이다. 3구는 長江流水로 가벼운 사람이 강물을 스쳐가듯이 망망대해를 고요히 지나가는 격조이며 4구는 平沙落雁으로 기러기가 백사장으로 내려 앉듯이 휭돌아 멈추는 격조이다. 따라서 초장에서 끝간데를 모르고 올라갔던 소리가 중장에서는 땅으로 내려옴을 그 끝소리로 한다. 그리고 초장이 앞에서 본 바와 같이 전장 혹은 님·어전·임금님의 뜻이 있다면 중장에서는 한국말에만 특징인 님에 대한 나는 '저'가 되며 임금 앞에서는 소첩·죄인, 또한 아버지 앞에서는 소자 등의 격하된 자기를 지칭하게 된다. 이러한 중장의 이미지 및 상징들은 다른 어떤 특징들을 탐색해 내더라도 동일성이 내재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초장과 중장과 리듬 및 의미에까지 서로 상반된 관계에 있다고 보게 된다.

    종장은 이들의 조화 및 합을 나타내는데 우선 종장의 3자에서 나와 너와 또다른 하나가 합쳐진 것을 대표적으로 표현해 본다면 '우리님'이라 할 수 있다. 묘하게도 한국적 조화의 사상을 전제로 한 한국말의 특징이 되는 이 표현은 '나의 님'이나 '너의 님'이라고 하는 한정된 규칙을 찾을 수 없다. 때문에 예를 든 이 3자는 '어른 님'이 되는 어떤 대중의 대표되는 사람으로 이미지가 바뀌고, 따라서 임금 및 대통령인 모든 살마의 주인격인 상징성으로 바뀌게 된다. 때문에 초장에서 있었던 단순한 나의 대상인 님의 이미지와는 다른 포용적이고 종합적인 뜻으로 바뀌게 된다.

    이와 관련하여 종장의 2구에서는 한국적인 경사상에 의한 어휘의 존칭 서술이 전개됨에 따라 '오시어든 날 밤'이라고 하는 시조적 특징이 나타나서 이것은 3음절 속에서는 부족한 내용을 5음절 이상의 풀어주는 리듬으로 전개된다. 따라서 종장 및 첫 3음절은 그러한 '어른 님'이 '아이야'하고 부를 수 있는 여유자적한 명령의 권한이 주워진다. 심지어 시조의 장르가 아닌 용비어전차의 경우도 '님금하'와 같은 용기있는 명령형이 3자로서 표출된다. 그것은 규모가 아주 큰 '明月이'와 같은 우주의 이미지로서 표현된다. 초·중장이 님과 나 혹은 너와 나의 대화체적 관계라면 종장은 정의적 관계에 있다. 이것은 초·중장을 남·녀의 관계로 볼 때 종장의 아들이 되는 관계로도 유추된다. 이와 관련하여 음악성으로는 종장 1구는 초장처럼 이제 하늘로 날아 오르는 격조도 아니요 중장처럼 내려오는 격조도 아닌 遠浦歸帆으로 먼 바다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뱃노래의 흥겹과 우렁찬 격조이다.

    2구는 洞庭秋月로 호수에 비친 밝은 달빛처럼 명쾌하고 찬란한 격조이다. 3구는 完如盤石으로 튼튼한 반석이 된 안정성의 격조이다. 이처럼 종장은 초·중장의 격조와는 다른 평면구조의 격조가 된다. 따라서 초·중·종장은 삼각형 구도를 나타내어 입체적임을 유추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각 시조 초·중·종장의 1·2·3·4구는 음악적으로 본다면 언어의 3·4·5자를 동일시하는 구형본위로 되어 있음으로써 12구형으로 인정된다. 이 때의 운율은 종장 첫구에서 그 3자형이 부동수로 되는 것과는 반대로 초장의 둘째 넷째구가 3자형을 거부함같이 중장의 넷째구에서도 3자형을 대신 종장의 넷째구는 도리어 3자형을 택하는 특징이 있다. 이것은 한국적 언어의 특질에서 첫음절과 둘째음절상의 3·4음절적인 자연성에서 비롯되는 것이며 또한 리듬과 관계되는 것이다. 시조의 3·4·3·4/3·4·3·4/3·5·4·3의 음수율 관계는 곧 대립과 조화의 초·중·종장적 관계로 인하여 초장의 3과 중장의 3이 대립의 리듬에 있고 그리고 초장의 4와 중장의 4가 대립리듬에 직면하게 된다.

    이 때문에 시조는 곧 시어의 특징인 시어의 선택에 치중되어야 하게 된다. 가령 예를 들면 초장에서 '태산이…'하였다면 중장에서 '계곡이…'라는 시어의 필요성으로 대두되고 이 때문에 시조작법성의 성질로 되게 된다. 이것에 대한 고증은 이미 연구한 바 있음으로 여기에서 다만 이러한 초·중장의 대립성으로 인하여 시조의 초·중장은 二而一의 동양적 철학성을 밑바탕으로 한, 커다란 의미에 있게 됨에 따라 종장과 함께 초·중/종장의 시조 3장은 2분의 안정성을 지닌다.

    일찍이 퇴계는 이기설을 내세워 이기철학의 태두가 되었는데 이또한 시조의 특징과도 연계되는바 초·중장의 어느 한 장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느 한 장이 내재함으로써 통합상징이 가능하게 된다. 천지사이에 참으로 하나도 우뚝하게 대립없이 고립된 것이 있을 수 없게 된다. 이와 관련하여 이은상의 양장시조론을 생각할 수 있는데 그는 그 내용이 불필요성에 의해서가 아니라 초장속에 중장이 내재하거나 중장 속에 초장이 내재한 의미의 대립리듬이 성립된다면 양장시조는 존재할 수 있다.

    시조가 초·중장의 의미적인 대립리듬에 있으면서 종장으로 이어지는 3장이 되는 것은 하나의 신화소가 되겠는데 이것은 시조의 작품 속에서만 있는 것은 아니다. 소월시에도 있으며 이상시에도 있다. 이것은 우연의 일치라고 볼 수 없는 우주의 철학과 관련된다. 따라서 시조가 시조의 멋일수 있는 것은 그러한 보편 타당성의 논리들이 제한된 작품 속에서 살아 있음에 있으며 이와 같은 작품 창작에 전념하는 시조인은 한국인 중에서 멋쟁이로 자랑할 만하다고 본다. 특히 시조가 초·중장과 종장의 관계에서 3분이되 2분의 안정성을 지니는 특별한 멋은 종장 첫구의 탄구에 있다.

    이것을 음악성과 관련하여 보면 합쳐서 흥겹고 우렁찬 절대의 소리가 된다. 이것은 이제까지의 초·중장의 의미의 비중과 맞먹는 소리가 된다. 따라서 많은 고대시가나 시조에서 보아온 감탄사가 그야말로 자연성으로 된 감탄임을 알게 된다. 감탄은 서정의 발로이며 이와 연계하여 한국시가 서정성이라는 일반적인 통념과 일치한다. 이것은 시조전체를 이 3자에 줄일 수 있는 신비한 감탄이어서 통합적인 리듬으로서도 시조의 신화소가 된다. 따라서 시조뿐만 아니라 시라 하더라도 이육사의 시 <청포도> 등에서 '아이야…'하는 시조적인 신화소를 발견하게 된다.

    이러한 시조적 신화소의 가장 특징이 되는 감탄사는 오감도에서도 감탄사로 표출된다. 특히 이러한 감탄사의 위치가 고대시가나 시나 시조에서 동일함으로서 전통시의 감탄사 위치는 일정하다 할 수 있고, 이러한 구조적 전통성은 시조에서 가장 합리적이고 논리정연성을 밑바탕으로 하는 종장 초구에서 발견된다. 따라서 오늘날 시조에서 감탄사가 배제되어야 한다는 관점은 시정되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시조의 생명이자 한국 전통성 즉 서정성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 어느 것 하나라도 대립되지 아니하고 고립된 것이 없다면 이의 대립성은 무엇인가. 그것은 시조의 끝 구 '하노라' 류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이세보 시조의 458수가 전부 종장의 끝구가 생략되어 있는데 이와 같은 종결구의 생략은 단순한 시조 문학에서만의 특징이 아니라 우리말의 자연스런 리듬이 된다. 끝말을 흐리거나 생략하여도 의미의 전달에 지장이 없을 뿐만 아니라 어른·님·왕 앞에서 끝말을 흐리는 우리말의 특성으로 종결어미는 생략될 수도 있다. 이와 연계하여 창으로서의 4구가 생략되었다는 것은 일상언어와 전연 별다른 것이 아닌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 이것은 남훈태평가에서, 개화기시조에서 종장의 끝구인'하노라'가 일률적으로 생략되어 있음도 마찬가지의 논리로 이해할 수 있다. 필자는 이것을 필자의 시집 [하오의 벨소리]에서 종장의 끝구를 생략하여 시조를 창작하여 보았다. 이것은 우리말이 대화체의 형식에서 비롯된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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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작메모-

      나에겐 늘 새벽마다의 기도가 있다. 올 여름처럼 태풍이 불어 온 나라가 울으마다가 되지 않기를 기도한다. 하늘에 해와 달이 하루종일 멈춘것처럼 인간의 기도도 들어주시는 하나님께 이젠 그만 남북통일과 백성들의 평안을 달라고 오늘도 엎드린다.

     

     

    고드름 벨

      -새벽기도·1306

     

    한 겨울

    창밖에서

    흰 눈을 꼭꼭 눌러

    하얗게 벨 누른다

    동동동 고드름벨

    딩동댕

    북극에서 와

     

    눈녹는 봄

    여세요

     

     

    우리의 하늘

      -새벽기도·1286

     

    북한의 하늘에는

    남한의 하늘같아

    우리가 잘 그리는

    그림이 그려있어

    하늘을 구멍뚫어서

    눈물비로 만난다

     

    부녘땅 강가에서

    종 치는 아이들이

    우리가 잘 그리는

    그림을 그려놓고

    돌면서 해 웃음으로

    악수하여 보잔다

     

     

    우리마을

      -새벽기도·1307

     

    해와 달 나란히서

    사는 산 우리마을

    호수는 그림자를

    포다당 던지고는

    봄볕을 하늘 가득히

    살랑살랑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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