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얀 종이를 꺼내놓고
- 운영자 2007.6.29 조회 5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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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지대 교수, 문학박사, 영예문힉목회교회담임목사, 시조시인
저서 한국시조문학론
이상시 연구
시조창작리듬론
시조문예미학
창조문학대상수상
추강시조문학상 수상
한국창조문학가협회사무국장
서울기독대학교 신학대학원 Ph. 과정중

편지
새벽기도.1156
받고픈 네 편지가
오는 날 나는 묶여
가슴과 두 손마저 꽁 꽁 언 안타까움
편지가 두 손떨림에 보라보라 얹힌걸
묶인 채 그 편지를
눈으로 바라보다
놓여놔
이리저리 가로로 새로맞춰
밤샘의 샘가에 앉아 눈물보라 맞추면
꿈에서 편지들이 글자의 순서대로
절절이
읽어주며
울면서 하얘지며
그리기 엉금엉금
보라보라 맞추면
잔쥬에서 온 전화
- 새벽기도.984
나
에요
여보세요
눈물의 사람이요
못보아 너무 울러 진주의 꽃다발이오
전화를 받아봐아요
주님이오
나
에요
꽃잎차
- 새벽기도 .1095
그대가 보고싶어
차 안에 앉는다
밤 내내 나폴나폴 떨어진 꽃잎으로
꽃차를 만들어 놓아
새벽으로 앉는다
그래도 보고싶어
앉는다 그리움에
오 이미 복사꽃뺨 새벽의 꽃잎차는
파르르
팔랑팔랑손
약속어음
꽃잎차
매화촛불
- 새벽기도.1096
매화비 돛을 단다
촛불을 달고 온다
잰 걸음 환한 너의
북밝힘
점령당한 이정표
바로 코 앞에 닻 내리며
오.는.중
들판이 날개 단다
희디흰 너의 안에
가슴을 태.우.는.중
꽃비다
매화 홍역 ]
촛불에 하루종일 타
매화비로
오.는.중
동백꽃
- 새벽기도.1100
섬이야
삼월의 섬
동백꽃 덩어리야
그 파란 숨을 내 쉰
숨결이 예까지 와
꽃망울 터트리어서 꽃잎붉은
소릴 내
봄이야
보고싶은
하늘꽃 덩어리야
열리는 하늘자락
숨결이 예까지 와
봄 속을 터트리어서 꽃잎붉은
소릴 내
숨소리
터널이야
목마름덩어리야
새 봄의 하늘눈섶
숨결이 예까지 와
동백꽃 머리기름의
기다림을 품어내
***이영지 교수 시조창작교실-시조의 대화체*** 1) 초장 물아일체의 대화체 시조는 시절가 즉 시절의 이야기다. 이야기는 대화체다. 시조가 자연 발생적이라함은 시절가 즉 계절의 특성을 이야기하는 것이 되고 자연의 순응에서 오는 순환성을 삶의 기본으로 하는 이야기이다. 따라서 한국인들은 계절적 감각이 뚜렷하기에 1년 열두달에 대한 것을 때에 따라 시로서 승화시키게 하는 자연발생적인 대화체를 갖는다. 이와 관련한 12구는 12계절의 상징성이 된다. 우선 초·중장의 대립의 리듬과 일년을 4계절로 한 초장의 경우 봄·여름·가을·겨울의 리듬이 1·2·3·4구에 해당한다. 1·2·3·4구를 사계와 시조의 음악성과 관련시킬 수 있는 이유는 시조의 각구에 대한 설명이 있기 때문이다. 초장의 1구는 뭉개구름이 피어오르듯 붕뜨는 봄의 이야기이고 2구는 한 과정을 뛰어 넘으면서 제멋대로 연장되는 여름의 신화와 같은 이야기며 3구는 가을의 신화와 같이 싸늘하고 외로운 이야기며 4구는 비극의 아이러인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영원히 살 것 같은 희미한 불빛의 겨울상징이 된다. 이러한 이야기의 비유를 기본으로 한 대화체는 시적의미 확대로 첫째 계절적인 순응의 동화로 규정지을 수 있다. 하늘에 떠 있는 달을 보고 슬플 때는 우는 달로, 즐거울 때는 웃는 달로 쳐다 보게 된다. 이것은 자연과 나와의 동일성이 되는 것이 되어 물아일체가 된다. 따라서 자연과 나는 대화가 가능하게된다. 금강이 무엇이뇨 돌이요 물이로다 돌이요 물일러니 안개요 구름일러라 안개요 구름이어니 있고 없고 하더라 이은상, 금강이 무엇이뇨 어허 저거 물이 끓는다 구름이 마구 탄다 둥근 원구가 검붉은 불덩이다 수평선 한 지점위로 머문 듯이 접어든다 이태극, 서해상의 낙조
어떻게 태어 났을까? 막내딸 같은 이놈
빙하 굽이돌아 영겁의 돌문 깨물고
연한 부리를 들어 해를 손짓하다니
장순하, 앵두나무논
어떻게 태어 났을까? 막내딸 같은 이놈
빙하 굽이돌아 영겁의 돌문 깨물고
연한 부리를 들어 해를 손짓하다니
장순하, 앵두나무논
나비야 청산 가쟈 범바뷔 너도 가쟈
가다가 져무러든 곳듸 드러 자고 가자
곳에서 푸대접폁거든 닢헤서나 믁고가자
무명
청산은 엇데폁야 만고에 푸르르며
유수는 엇데폁야 주야에 긋지 아니?고
우리도 그치지 마라 만고상청호리라
이황
말 없슨 청산이오 태 업슨 유수 로다
갑 없는 청풍이오 임믁 업슨 명월이로다
이 듕에 일 업슨 鏡 몸이 분별업시 늙그리라.
성휘
위의 시조들은 물아일체의 동일성을 전제로 한 대화체로 되어 있다. 시조작품이 구전되었다고 볼 때 그 작품 속에는 구전을 가능하도록 하는 어떤 원리가 있었을 것이다. 그것은 직접 대화할 수 있는 대상이 없다 하더라도 자연을 통해 의사전달이 가능하다는, 즉 마음으로 자연에게 호소하고 그 자연은 그것을 들어주고 대답해 주는 상태의 지경까지 몰입되는 자연과의 친숙성에 있다. 사실 시
조작품은 거의 모두 이 자연과의 동일성에 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고대시가 뿐만 아니라 현대 자유시에 이르기까지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는 작품들이 대화체임에 비추어 시조 작가들도 이에 유의하여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의 이해는 그 비평 방법 및 연구의 접근 관계가 모방론에 해당한다.
2) 중장 균등과 불균형의 대화체
중장에서는 초장의 대립인자에 의하여 1·2·3·4구가 계절의 역순인 겨울·가을·여름·봄의 순서가 된다. 따라서 음악성을 지닌 시조와 관련하여 보면 1구가 아득한 절망적인 어려움의 겨울이야기, 2구가 가을의 낙엽처럼 구르는 이야기, 3구가 마냥 늘어지는 이야기, 4구가 떠올랐던 기러기가 휑하니 돌아와 앉는 상징성으로 비유된다. 이때 본래의 지켜져야 할 바람직한 대상을 중심으로 좌우에 각각 인간의꿈이 깨어진 만큼의 희망적인 이미지와 본래의 평화로움을 추구하는 역설적 구조이다. 나는 이것을 좌우 균등성이라 해본다. 여기에는 변질된 자아와 변질된 대상과의 대화가 있게 된다.
또한 흰 얼음과 검은 색을 칠판 얼음에 대한 느낌의 차이가 다르듯이 보이는 사물의 그 자체를 통해 직감하는 차이가 다를 수도 있다. 이것은 시각적 관계인데 본래의 존재에는 관계없이 인간이 저지르는 잘못에 대한 평가에 해당하며 역시 대화의 단절상태가 절망이기에 불균형의 의미가 된다. 나 아닌 대상을 높이는 가장 구체적인 실례는 부모와 자식관계다. 그런데 한국인들은 시적인 은유의 긴장관계를 슬기롭게도 까마귀로 비유하여 시조작품에 반영하고 있다. 이때에도 물론 대화체로서 작시조하고 있다. 초·중·종장의 관계를 보기로 한다.
? 어버이 자식 사이 하늘 삼긴 至親이라
부모곧 아니면 이몸이 있을소냐?
烏鳥도 反浦를 하니 부모 효도 하여라
김상용
? 수풀에 까마귀를 아이야 쫓지마라
反浦孝養은 미물도 하는구나
나같은 孤露餘生이 저를 부러워하노라
신헌조
? 뉘라서 까마귀를 검타 흉타 하돗던고
반포보은이 긔아니 아름다운가
사람이 저 새만 못함을 못내 슬허하노라.
박효관
? 김상용의 시조에서는 초장에서 부모와 나의 친밀한 혈육관계를 설정하고 있다. 한국은 가족 울타리의 친족 개념이 발달되어 있다. 나 아닌 남을 존대하고 지성으로 생각하는 것은 가장 근본적인 부모와 나의 '지친' 관계에서만 비롯된다. 따라서 초장은 부모에 관한 장이 된다. 그리고 중장에서는 '이몸이' 존재하는 것 즉 나의 장이 된다. 종장에서는 '烏鳥'의 은유적 표현을 통해 효도의 길을 권하고 있다. 이와 같이 시조를 통해 교훈을 제시하고 또한 까마귀로 반포하는 방법에 대한 인간의 감동을 유발시키는 것은 시학의 논리로 볼 때 효용론 pragmatic criticism이 된다.
이 효는 일찍부터 한국문학의 주제가 되어 왔다. 이처럼 시조작품내에서 '까마귀'의 효용론적 문학표현에 의한 많은 회수의 빈도로서 작품화 되고 있다는 것은 시조작품적인 특징에 성과에 대한 기쁨으로 투영된다. 따라서 초장에서 부모와 자식사이의 지친관계가 효이고 종장에서도 오조의 반포를 전제로 한 효가 되어 있음으로서 중장의 나의 존재와 관련된 좌우 균등의 구조에 있다. 동시에 초장이 부모의 장, 중장이 나의 장, 종장이 세상 사람들을 향한 공개념에 있게 된다. 이러한 시조의 특징은 효를 전제로 한 기쁨의 확대 개념 즉 배수로 늘어나는 효의 장이 된다.
?의 신헌조의 시조에서는 초장에서 '아이야'를 전제로 이 아이는 세상 사람들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실제 많은 사람들이 불효를 하고 있으면서도 효를 행하고 있는 대상에 대한 순수한 꿈을 표출하고 있다. 반면 중장에서는 '반포효양'을 하는 미물이 까마귀 오와 등가물로 대치되면서 초장과는 전연 다른 장의 자리가 된다. 즉 사람이 아닌 '미물'이 만물의 영장인 사람이 할 수 없는 효를 행하고 있는 현실성이 강조된다. 이처럼 시의 역설법으로 되고 있는 초중장가의 의미는 사실 인간이 효를 행하고 있지 않다는 현실성과 이와는 다른 '미물'까마귀에 대한 교훈적인 대상을 '아이야'라는 대상을 통해 대화체로 표출하고 있다. 그런데 종장의 '나같은 고로여생'은 초장의 '아이야 쫓지마라'라고 하는 불효의 구조와 등가 관계에 있다. 따라서 신헌조의 시조가 지닌 대화체는 중장의 '반포효양'하는 '미물'인 까마귀를 중심으로 초장의 '아이'와 종장의 '고로여생'이 좌우 균등의 리듬이 되어 있다. 이 시조는 인간들의 불효에 대한 시조의 주제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불효'에 대한 갈등은 오감도에서도 이상이 그의 시 제목을 '오…'로 할만큼 심각한 것이다.
? 박효관 시조는 초장에서 까마귀의 겉모양이 문제시 되고 있다. 그것은 까마귀가 겉모양은 검지만 그것을 문제삼아 서는 안된다는 의미가 숨어 있다. 또한 종장에서도 사람이 새만 못함을 뜻하는 것은 역시 표현론적 등가관계가 된다. 한국말은 나와 너와 상황의 삼각관계에서 이루어지는 상관논리를 지닌다. 따라서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그리고 그 상황이 함께 공존하게 된다. 때문에 나와 너만의 단 둘이 되는 개념이 아니라 삼각관계인 우리의 관계가 성립된다.
이것은 곧 시조가 3장이 되는 것과 연계된다. 때문에 박효관의 시조의 경우에도 한국말이 지니고 있는 첨가어적인 즉 '까마귀가 검다마는'의 '마는'의 의미가 강조된다. 따라서 초장에서는 일반 사람들이 검다고 하는 까마귀를 겉이 검다는 것만으로 평가하지 말라는 말이 된다. 그리고 중장에서 실제적인 '반포보은'의 까마귀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러나 종장에서는 일반 사람의 불효가 강조된다. 이러한 시조가 주제로 하는 것은 초·중·종장의 중장을 중심으로 한 좌우 균등관계에 있다.
? 까마귀 검다한들 속까지 검을소냐
자오반포라 하니 새중에 효자로다
사람이 그 안 같으면 까마귀엔들 비하리
지덕붕
? 까마귀 열두소리 사람마다 꾸짖어도
그 새끼밥을 물어 그 어미를 먹이나니
아마도 오중회자는 까마귄가 하노라
김수장
시조에서 까마귀와 대화체가 연결짓는 것은 시조의 시적 긴장관계를 높이 사는데 있다. 즉 이것은 시조문학적 가치에 상승하는 것이 된다. ?의 지덕붕 시조도 역시 초장에서 까마귀의 겉모양이 검단한들의 '…한들'의 첨가어와 종장에서의 까마귀엔들의 '…엔들' 첨가어가 좌우 균둥관계가 되면서 '새중의 효자' '자오반포'의 중장이 중심주제가 된다. ?의 김수장 시조도 역시 중장의 '그어미를 먹이나니'와 초·중장의 관게가 좌우 균등관계에 있다. 초장은 사람마다 꾸짖는 까마귀에서 사람의 무리 개념과 까마귀의 관계이고 종장은 새무리의 개념과 까마귀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의 중심촛점은 그 어미를 먹이는 데 있다. 시조에서 까마귀와 효와의 관련성은 받들어 섬기는 데 있고 이것은 한국인의 나를 낮추고 남을 받들어 공경하는 마음의 자세 즉 모든 행실의 근원
이 되는 효의 사상이 들어 있는데 있다. 나를 낮추는 의미는 첫째가 아닌 두 번째 자리 즉 중장에 해당한다. 초장은 첫 번째로 님의 자리 즉 나보다 앞선 자리이고 더 나은 장이며 중장은 이에 정반대가 되는 자리 즉 님보다 못하고 보다 더 낮은 장이 된다. 이? 님보다 못하고 더 낮은 나는 남 즉 님을 열심히 받들어 섬겨야 그 님의 자리에 올라갈 수 있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러한 학설은 성경에서 겸손이 가장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며 민속에서는 지아비를 왕처럼 섬기면 그 아내도 왕후가 된다는 이야기와 접맥된다. 따라서 시조에서의 대화체란 내가 남보다 낮기 때문에 나를 낮추는 것이 아니라 조화와 융화를 위한 뿌리의 신화소로 존재한다. 시조에서의 까마귀를 전제로 한 효의 문학적 가치는 좀더 다른 차원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교훈적인 시조이기 때문에 문학적 가치가 낮게 평가된 이 점은 오히려 까마귀처럼 외모가 검고 불길함으로 상징된 이 시적언어를 통하여 시적 긴장관계가 고조된 일면을 탐색하게 된다.
이것은 나를 낮추어 가장 불행하고 비극의 주인공처럼 된 밑바닥에서 출발하여 인간들의 최고의 덕으로 삼는 부모 내지는 내 이웃을 잘 섬기는 위치까지 오를 수 있게 되는 점에 있기 때문이다. 시조에서의 나를 낮추는 상징의 이 까마귀 '오'는 이상의 오감도에서도 전통성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 오의 남을 받들어 섬기는 특징은 시 제1호에서부터 시 제4호까지 반복적 리듬으로 시어를 회화화하고 있다. 따라서 시조에서의 대화체란 단순한 대화의 의미를 훨씬 넘어서 한국인의 실생활과 관련된 철학성과 연계된다. 지금까지의 이에 대한 문학의 비평 및 연구방법의 접근은 효용론적이 된다.
3) 종장 님 의미의 대화체
종장은 회복적인 이야기로의 순환적인 봄·여름·가을·겨울이 된다. 또한 이 복합상징의 이야기는 1·2·3·4·5·6·7·8월을 지난 9월의 결실과 관계되는 이야기를 전제로 한다. 그 의미는 인간을 주제로 한다는 의미로 확대된다. 시조 특유의 음악적인 종장의 흐름도 푹 젖어 있는 우리의 의미로 볼 수 있는데 가장 인간적인 사랑과 애환의 상징성으로 된다. 종장적인 대화의 현재형 표현은 님과 나라고 할 수 있다. 이때 한국의 시제형의 특징에 의하여 님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유기적인 관계의 현재형이 된다. 즉 님이 과거에 죽었건 미래의 약속이 없건 관계없이 살아 있는 현재형의 대상이 된다.
이 때문에 한국 문학의 감미로운 사랑의 이야기인 춘향이나 아랑의 정조가 있게 된다. 이 대화체는 리듬을 전제로 한다. 여기에서 리듬이란 상대방이 높으면 나는 낮고 상대방이 주면 나는 받는 리듬이 된다. 때문에 시조에서의 대화체적인 리듬이란 맞서서 싸우는 리듬이 아니라 공경을 전제로 한 대화체의 리듬으로 한정하게 된다. 이 경우 지극히 나를 낮추는 개념에 대하여 반론을 제기할 수 있으나, 그것은 한국적 효에 대한 불이해에서 온다. 상대방을 높이면 나도 높아질 수 있는 권리는 우리의 민속 가운데 지아비를 왕으로 높이는 자는 지어미도 왕후가 된다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이 때문에 한국시는 님의 시라 할 수 있다.
이때 한국 시조에서의 님 때문에 눈물과 한숨의 내용이 되는 것은 문학적 연구의 접근 방법으로는 표현론이 된다. 나를 가장 낮춘 표현은 나의 행복에 대한 자랑이 아니라 겸손과 은근이 스며든 가장 애절한 모습으로 투영된다. 이러한 현명하고 슬기로운 몸짓은 상대방으로 하여금 넉넉한 여유를 가지고 한 아름 포용할 수 있는 기개를 선물로 주게 된다.
이화우 훗날릴제 울며 잡고 이별한 님
추풍낙엽에 져도 나를 생각는가
천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하도다
梨花는 李花와 동음어의 꽃이다. 그런데 이화는 이조시대의 꽃
이라는 뜻이다. 무궁화가 군자국에 있어 양보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사는 나라의 꽃인데 이꽃은 아침에 이슬을 먹으며 피었다가 저녁에 떨어져 버리면 다른 꽃송이가 또 피고 또 피고하여 끊임없이 뒤를 이어 자꾸 무성하는 꽃이다. 이꽃이 이조시대에 와서 이조왕실을 상징하는 이조의 꽃이 된 이화로 바뀌어져 있다. 따라서 매창의 이화는 상당한 상징성을 띄게 된다. 시만이 지닐 수 있는 모호성 내지 애매성은 표현론에 따른다면 님과의 이별의 뜻이 있다. 시조에서의 이러한 이별은 매창의 작으로 조선해어화사에 기록된 다른 작품에서도 표현되고 있다.
내 정령 슐에 셧겨 님의 쇽에 흘너들어
구곡간장을 寸寸쏁져 ?며 날잇고
님 향한 마음을 다 슬우려 하노라
잘꿡는 다 나라들로 남루에 북우도록
십주가기는 처량타고 하리로다
두어라 눈넙운 님이니 꿡와 어이폁리오
기럭이 산이로 잡아 정드리고 길?려서
님의 집 가? 길을 역력히 가르쳐 두고
밤중만 님 생각 날제면 소식 전케 하리라
언약이 느져가니 정매화도 다 지겟다
아츰에 우든 까지 유신타 폁랴마는
그러? 鏡中蛾眉를 다스려? 보리라
도화는 엇지하여 홍장을 짓고셔서
세우동풍에 눈물은 무?일고
춘광이 덧업슨 줄을 못늬 슬어폁노라
매창
등잔불 그무러 갈 제 창에 집고드는 님과
오경종 나리올제 다시 안꼬 눕는 님을
아무리 백골이 진토된 들 이즐줄이 잇시랴
鏡 가슴 슬이는 피로 님의 얼골 글여鏡여
나자는 방안에 족자 삼아 거러두고
살뜨리 님 생각날제면 족자? 볼?하노라
창외삼경 세우시에 양인심사 양인실이라
신정이 미급하여 폁늘이 장차 밝아오니
다시금 나삼을 뷔여 잡고 뭇노라
창오의 붕상수절이라야 이鏡 시름이 업슬거슬
구의봉 구름이 가지를 꿡로워라
밤중만 월출어동령하니 님 뵈온 듯 하여라
이별의 위 시조들을 이은상·김지용·정익섭 등이 매창 작의 9수로 보는 근거에는 조선해어화사에 의한 것이다. 또한 시조뿐만 아니라 그녀의 한시에서도 이별이 표현되고 있다. 매창시조는 황진이시조처럼 여류적 이별의 슬픔이 거의 대부분이다. 그런데 이러한 님과의 이별은 여성쪽에서만 한과 그리움을 간직하는 단계로 본다면 불균형성이 된다.
서창가 대나무에 달그림자 너울너울
복숭아 숲바람 불어 꽃들은 춤추누나
난간에 기대앉아 잠못자니 꿈이 없고
멀리서 들리는 두릅따는 노래뿐
야좌, 김지용 역
이별이 서러워 중문을 닫았노라
비단 소매 임향기 없고 눈물 자국뿐
외로운 규수방에 사람없어 적막한 데
뜰가득 가랑비는 황혼마저 잠그었구나
규원, 김지용 역
비단 매창 시조뿐만 아니라 한용운의 님의 침묵에서 보이는 임과 나의 엄청난 위치의 불균형적인 차이는 상대방의 절대적인 위치와 나의 보잘 것 없는 관계를 내가 그 절대자를 그리워하고 못잊어 하는 것으로 일관된다. 이때 절대자는 미움이나 증오의 대상이 아니라 그토록 오랜 침묵을 지키고 있는 님의 부재인데도 나의 잘못, 나의 미흡함으로 일관된다. 이것은 불균형의 특징에 있다. 이에 대한 문학연구의 접근은 표현론이 된다.
이러한 한국적 전통의 철저히 나를 낮추는 심리는 보다 더 깊고 사려깊은 상대방의 포용의 결과를 가져온다.
4) 시조와 리머릭
시조에서의 대화체는 단순한 시조에서만의 특징일 수만은 없다.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는 자유시들을 찾아보면 당연하게도 대화체로 된 작품들로 되어 있다. 소월시의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진달래꽃> 등을 위시하여 서정주의 <추천사> <춘향유문>의 몇 작품만을 보아도 쉽게 이러한 대화체의 틀을 가지고 있음을 보게 된다. 그러나 시조에서처럼 질서 정연한초·중장의 구별을 가져 오는 것은 아니다. 이 초·중장의 대화체는 어디에서 연유하는가. 그것은 우리 문학이 갖고 있는 구비문학의 접근을 가능하게 하여 고대시가에서 쉽게 찾아보게 된다. 따라서 시적문장의 특징 즉 산문이 아닌 운문은 대화체, 그 자체가 하나의 리듬에 근거하고 있게 된다는 뜻으로 귀착된다.
리쳐드 러트는 [Bamboo Glove]
에서 시조가 서정성의 특징을 지녔다는 글과 그리고 고시조들을 주제별로 나누고 있을 뿐만 아니라 코리아 타임즈지를 통해 한국인에 대한 생활을 시조다운 리머릭(limerick)의 작품으로 발표하였다. 시조에 관심이 없었던 그는 리머릭을 통해 시조형식을 다음과 같이 나타내고 있다. 몇 예를 들기로 한다.
? Spring flagrance, The pride of Nam Won
Rejected all male Hangers-on
Till one day in spring
She went for a swing
Wich a rich boy:and then it wason
Richard Rutt.
남원의 춘향이는
뭇남성 거절하고
어느날 봄속으로
헤엄쳐 잠기누나
님과만 한데 어울려 사랑 속에 잠겨라.
필자 역
? Afer-famed Kisaeng of Kiesong
Said "Life may be briefart is long"
Hwang Chini shoild know
Though she sleep neath the snow
Her sijo are still going strong
Richard Rutt.
그대 개성 기생이여
예술은 오래가는 것을
황진이는 알았어라
눈속에 잠잘지라도
그녀는 시조로하여 빛나는 것을
필자 역
Kim Sak-Kat, The famed poet of spoof,
from his family kept quite aloof
He wandered the land
With rainhat in hand
Like gome kat on a hottin roof
Richard Rutt.
방랑시인 김삿갓은
집안의 비밀 감추려고
삿갓을 머리에 스고
나라를 두루 돌며
뜨거운 양철지붕의 삿갓으로 살았네
필자 역
That beautiful Koryo celadon
Is ages-old pottery mellowed on
The dank floors of tombs
Now in stylish foreign rooms
Cake is served in what sheletons yellowed on
Richard Rutt.
아름다운 고려청자
무덤속 기어나와
찬란히 빛을 발하네
멋진 외국인 방에
오래된 고문갑 위에 다소곳이 있구나
필자 역
그런데 이러한 리머릭에서 대화체의 시가 발견되고 있다.
A missionary did a slow burn
And trid to shame alfie to learn
Said Gert, "if I study
A language this muddy
I'll here no time left over to earn"
Richard Rutt.
한 전도사 어울려서
배우려 했네 부끄럼이 무엇인가를
겔트는 "내가 만일
한국의 혼탁한 언어를 배운다면
시간은 다 빼앗기고 아무 것도 없겠네"라 하네
필자 역
겔트 전도사 한국와서 사는 동안
한국의 혼탁한 언어를 배운다면
시간은 다 빼앗기고 아무 것도 없다 하네
필자 역
A bicycle called Ming
Had a fit when his bell wouldn't ring
"If I don't have a bell
Them my job's shot to bell
Bell no ring, Ming can't carry a thang"
Richard Rutt.
자전거 탄 밍 아저씨
벨 고장나서 안달났네
"벨이 울리 잖으면
나의 직업은 끝장이야."
따르릉 울리지 않으면 끝장이야 하더라.
필자 역
자전거 탄 밍씨 벨고장으로 안달이네
"벨이 울리지 않으면 내 직업은 끝장이야
따르릉 울리지 않으면 끝장이야" 하더라.
필자 역
Around the room, all torn and tattered,
Tittered woman blah and blah
Behind the talk, all rawand ravaged
Buttled riddles blahand blah.
Blah blah blacksheep,
"Yes,sir;Yes,sir"Three bags said.
Clifford Pfeil.
헤어져 눈물마다 방나와 웃음바다
거짓말 드러나는 헤어질 때 속임수
가짜양 얼마나 모았냐구요 세가방은 되지요
필자 역
이러한 리머릭적 대화체를 번역하여 본 결과 '하더라'의 시조적 종장 4구 형태를 되찾을 수 있었는데 이것은 단순한 번역의 의미보다는 시조에서의 '…인고 하니' '…하더라' '…하노라'형이 대화체임을 역설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대화체 형식이 어느 시대 어느 나라의 특징이라기 보다 에이레의 리머릭에서도 대화체가 되는데 주목할 수 있다.
There was an old man of st. Bees,
Who was stung in the arm by a wasp,
When asked, "Does it hurt?"
He replied, "No, it doesn't,
I'm so glad it wasn't a hornet.'
W.S. Glibert
A tutor who taught on the flute
tried to teach two Young tooters to toot,
said the two to the tutor,
"It is harder to toot, or
To tutor two tooters to toot?"
Anonymous
Thre once was a man who said, "God
Must think it exceedingly odd
If he finds that this tree
still Continues to be
When there's no one about in the quad."
Donald Knoy
There once was a man who said, "Dumn!
It is borne upon ne thft I am
An engine that moves
In predestinate grooves,
I'm not even a bus, I'm a train."
Maurice E. Hare
따라서 시조의 대화체에 대한 평가는 리머릭에서도 대화체를 볼 수 있음으로서 세계적인 평가 즉 운문의 특징이 대화체여야 하는 역설적인 한 예를 들어 보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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