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예문학교회(이영지poetclasschurch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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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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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영자 2007.6.29 조회 396

           이영지

                                                                                     명지대 교수, 문학박사,  영예문힉목회교회담임목사, 시조시인

                                                                                      저서 한국시조문학론

                                                                                              이상시 연구     

                                                                                              시조창작리듬론

                                                                                              시조문예미학

                                                                              창조문학대상수상

                                                                            추강시조문학상 수상 

  •            한국창조문학가협회사무국장

  •       서울기독대학교 Ph.D 과정중


     
     
     
     
     
    제목   최규철목사 원로추대식에 부쳐 
     
     
     
    연지곤지  바른  얼굴의  예수님 신부가  되어  하나님  사랑으로  주님과  함께  한지도  엊그
    제  같은데  이제  하나님이  지명하여  주사  새  예루살렘  지권을  대행하여  오늘  이렇게 
    원로  목사롤  지명하여  주심을  하얀옷으로  받나이다
    아브라함이  열국의  하비되심을  믿음으로  받는  아들이  되어  꽃으로  얻은  우리  사랑하
    는  장로님들과  권사님들과  성도님들의  사랑  속에  기쁨의  눈물꽃으로  얼굴이  온통  빛나
    나이다 
    주춧돌로  감돌아  들며  밤낮으로  엎드리다  이제  원로의  하얀돌로  앉았나이다 
    구름으로  가는  세월을  붙잡아  열두  돌을  기념하여  이  성전에서  날마다  제단을  쌓아 
    이렇게  좋은  원로의  선물  주시고 

    노오란  햇살  더듬어  꼭꼭  다듬어  주신  이  경작지에서  추운  겨울  속이  허한  이들에게 
    따뜻한  말씀으로  소박하여 
    안믿던  이들이  쌓았던  벽돌담을  헐게  하시고 
    청지기로서  주신  이  영신  교회에서  자유와  기쁨과  눈물  범벅으로  오늘  하나님  앞에  감
    격하고  있습니다
    말씀만으로  사랑하는  사모님과  공주와  왕자들을  주시고  뒤척일수도  없는  세월의  꿈
    을  여기에서  담대하게  삭게  하시고  담임목사로서  다듬은  손끝  어느것  하나  하나님의 
    보살핌이  없는게  없습니다 
    밝고  맑은  푸른  하늘에  가득  찍히는    목사님의  발자국  때로는  그  울부짖음의  목성처
    럼  거칠게도  하셨으나 늘  건강주시고  영신교회  교인들이  쓰는  이력서  제일  앞줄에  적게  하시고  바다의물을 
    퍼담듯  한량없는  은혜의  눈물로  이  시를  바칩니다 
    2004.  12.  19  
     

     

     

    편지

    새벽기도.1156

     

    받고픈 네 편지가

    오는 날 나는 묶여

    가슴과 두 손마저 꽁 꽁 언 안타까움

    편지가 두 손떨림에 보라보라 얹힌걸

     

    묶인 채 그 편지를

    눈으로 바라보다

    놓여놔

    이리저리 가로로 새로맞춰

    밤샘의 샘가에 앉아 눈물보라 맞추면

     

    꿈에서 편지들이 글자의 순서대로

    절절이

    읽어주며

    울면서 하얘지며

    그리기 엉금엉금

    보라보라 맞추면

     

     

     

     

    잔쥬에서 온 전화

    - 새벽기도.984

                                                              

    에요 

    여보세요

    눈물의 사람이요

    못보아 너무 울러 진주의 꽃다발이오

    전화를 받아봐아요

    주님이오

    에요

     

     

     

     

    꽃잎차

    - 새벽기도 .1095

     

    그대가 보고싶어

    차 안에 앉는다

     

    밤 내내 나폴나폴 떨어진 꽃잎으로

    꽃차를 만들어 놓아

    새벽으로 앉는다

     

    그래도 보고싶어

    앉는다 그리움에

    오 이미 복사꽃뺨 새벽의 꽃잎차는

    파르르

    팔랑팔랑손

    약속어음

    꽃잎차

     

     

     

    매화촛불

    - 새벽기도.1096

     

    매화비 돛을 단다

    촛불을 달고 온다

    잰 걸음 환한 너의

    북밝힘

    점령당한 이정표

    바로 코 앞에 닻 내리며

    오.는.중

     

    들판이 날개 단다

    희디흰 너의 안에

    가슴을 태.우.는.중

    꽃비다

    매화 홍역 ]

    촛불에 하루종일 타

    매화비로

    오.는.중

     

     

     

     

     

     

     

     

     

    동백꽃

    - 새벽기도.1100

     

    섬이야

    삼월의 섬

    동백꽃 덩어리야

    그 파란 숨을 내 쉰

    숨결이 예까지 와

    꽃망울 터트리어서 꽃잎붉은

    소릴 내

     

    봄이야

    보고싶은

    하늘꽃 덩어리야

    열리는 하늘자락

    숨결이 예까지 와

    봄 속을 터트리어서 꽃잎붉은

    소릴 내

     

    숨소리

    터널이야

    목마름덩어리야

    새 봄의 하늘눈섶

    숨결이 예까지 와

    동백꽃 머리기름의

    기다림을 품어내

     

     

     

      

     

     

     

     

     

     

     

     

     

      • 구약성서의 이해
      • BW 엔더스 제석몽 옮김에서의 공동계약체 형성의 문제점

      •  기원전 13세기에 이미 이스라엘은 가나안을 정복하였지만
        이  땅에 들어온 와 여호수아가 죽고 난 후 사울의 왕정시대가  되기까지 이스라엘의 동맹체제는 끊임없는 투쟁의 연속 판관들이 지배한 시대(룻기 1:1) 기원전 12, 11세기였다.  그곳의 농경생활에 적응하려 가혹한 시련을 겪는다. 토착민과 무자비한 전쟁이었으며 이스라엘인은 전쟁, 조약으로 부단한 공세를 펴는 한편 가나안인과 공맹관계를 가지고 있었으며 그 싸움은 종교적 갈등인 소위 이데올로기 투쟁이었다.

      • (1) 가나안 문화의 유혹
        이스라엘인은 생활환경이 사막이었던 관계로 비옥한 반달지대의 문화에 거센 반발심을 가졌는데 그 예로 아벨-양떼 제사를 야훼께서 받아들였으나  형인  - 카인이 곡식은 거절 당하고 동생을 살인(창4:1-17)하게 된다. 또  노아가 그 땅에서 농사를 지은 후 포도주에 취해 추태를 보인후 가나안땅을  세 번이나  저주(창 9:18-27)한다. 그러면서도 가나안 문화의 중심지인 세겜에서 결성된 신앙은  모세 시대의 엄격한 신앙에서 일보 후퇴하고  이스라엘인은 유랑하던 히브리인의 지위-비옥한 반달지대 농민으로 전신하게 된다.  즉 유랑민의 하나님이었던 야훼가 곡식재배를 위한 비 계절의 변화를 관장하게 된다.
         
        2. 신명기 사관해설

      •  기원전 12-11세기의 과도기적인 현상은 야훼께 순종하면 번영과 평화 불복하면 고난과 패배가 오는 시대이다
        (1)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서 끌어내 준 야훼를 잊고 주변 백성들의 신들을 섬김으로 악을 행하자 (2) 그러므로 야훼께서 그들에게 노하시사 그들은 압제하는 적들의 세력에 넘기신다. 
        또 (3) 백성들이 고통에 못 이겨 참회를 하면 야훼께서는 판관을 내세워 적의 수중에서 구출하시어서 판관이 살아있는 동안 안정을 누린다. 4. 그러나 판관이 죽으면 백성들은 다시 우상을 섬기어서 야훼께서 분노하시고 다시 노략자들의 손에 넘기신다. 
         가나안땅에서의 고대 이스라엘을 분열시키고 파괴시키려던 가장 큰 위협은 가나안 종교이다.  만일 백성을 모아 모세의 신앙의 기준을 따르고 계약의 하나님께 새로운 충성을 바치게 했던 군사적 위기가 없었다면 분명히 이스라엘은 비옥한 반달지대의 문화적 용광로 속에서 녹고 말았을 것이다.  

      • 3. 종교와 농업
         가나안땅의 종교는 땅을 신들의 영역으로 생각하는 것이었다. 가나안 사람들은 그  땅의 풍산이 바알과 그 의 배우자 사이의 성적 관계에서 달렸다고 생각-바알과 그의 배우자 바알랏의 성교에서 비롯된다고 믿음- 바알의 성관계를 의식을 통해 재연하여 어떤 마술적인 힘을 통해 번식력 또는 생식력을 그들의 행위에까지 미치게 함으로써 자연의 번성을 보장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제의적인 매음이 가나안 종교이다. (신명 23:18). 이 점은  현대적 개념에서의 성을 통한 쾌락의 관점이 아니라 농부의 생존이 걸려 있는 전체 자연계의 작황이 종교적인 마법을 통해  주기적인 계절의 변화를 지속할 수 있다고 보는 점이다. 
        4. *라스 샤므라 서사시
         가나안의 바알종교는  풍성한 수확을 보장받고자 신전에세 바알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신화적인 드라마를 재연함으로써 그 마술적인 힘을 통해 풍산과 번영을 보장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5. 절충의 시도
         이스라엘 사람들은 군사적인 위기가 있을 때에는 여호와를 의지, 농사를 지을때는 바알을 의지,  두 신앙을 공존시키려는 경향이 강하게 일어난다. 따라서 가나안 종교의 신화와 의식을 여호와에 대한 예배에도 사용하였고, 벧엘, 세겜과(아마 길갈도) 같은 가나안 성소들이 여호와께 재봉헌된다. 가나안의 농사력이 축제시기를 정하는데 사용하여(출 34:22-23).심지어는 부모들이 바알의 이름을 따서 자녀이름을 따서 지은, 기드온은 여룹바알(Jerub-baal)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고,  여호와의 열렬한 신봉자였던 사울과 다윗도 자기 자녀들에게 바알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이 혼합주의(syncretism) 즉 이질적인 종교의 형태와 관점이 결합이 이스라엘이 처음 가나안에 발을 들여 놓았을 때부터 시작되는데 사실 이스라엘 신앙은 어떠한 경쟁자도 용납하지않는 질투하는 하나님으로 계약조항에 의하면 이스라엘은 여호와 앞에 어떤 신도 섬길 수 없다.따라서 여호와의 주권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절대적인 것으로 생활영역 전체에 해당. 그러므로 여호와는 이역사의  주인이고 바알은 저 영역(땅의 주인)이라고 생각한 것은 근본적으로 계약의 위배이다.따라서 후대의 예언자들도 이 두 신앙의 모순점을 쟁점으로 여호와나 바알 중 어느 하나를 택하라고 외쳤다. 세겜에서의 여호수아의 주장이 계속 제기된다. 누구를 택할 것인지 오늘 택하라 여호와는 생활 전체의 주인이요 전적인 헌신을 요구하기 때문에 절중이란 있을 수 없다.


      • 5. 종교와 성
         이스라엘에 의하면 신의 세력은 역사, 즉 하나님이 당신 백성을 종살이에서 구해내어 계약공통체내에서 당신 뜻에 따라 살도록 부른 비회귀적 사건으로(출애굽) 여호와에게는  여호와에게는 성적인 본성도 없고 성적인 의식으로 예배해서도 안된다(그렇다고 해서 이스라엘 신앙이 성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가진 것은 아님). 오히려 성은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것으로 신성시(창 1:27-28)여호와는 풍요를 관장하는 하나님으로 자연계의 변화에 따라 죽고 사는 신이 아니다 여호와는 자기 자신을 역사의 주인공으로 하여 미래의 진로를 바꾸도록 결단을 촉구하시는 살아 계시는 여호와 하나님,
        그러나 바알종교에서는 신을 지배하라고 가르치며, 이스라엘 신앙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 백성에게 부여한 임무를 다하기 위해 하나님을 섬기라한다. 이점을 이스라엘의 영도자들은 사막의 경험을 통하여 여호와의 엄격한 요구에 부합하게살다간다. 따라서 에로틱한 가나안의 종교는 다르며 모세 신앙의 참된 힘과 독장성을 깨닫기까지 모세의 신앙이 최후의 승리를 거둠으로서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그들은 체험한다.계속되는 적군의 침입앞에 여호와에 대한 열정이 새로이 일어난다. 

      • 6. 위기의 영도자들

      •  이스라엘의 정적들은 가나안과 가나안  인근지방에 있는  트란스요르단 지방의 신생국가들, 아라비아 사막에서의 침입자들, 가나안의 성읍 국가들, 그리고 필리스티아인들이 고작이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부족들의 조직이 허술(판관기에는 12명의 판관들이 410여년 동안 이스라엘을 어떻게 다스렸는지 적고 있음)하여 부족의 지도자들은 그때그때 나서서 해결하였다.( 예로 에훗- 베냐민 지파의 일원에 불과, 때때로 이들 지도자들이 다른 부족의 힘을 요청,지도력은 성격상 한 지역에 국한, 그것도 상황히 급박할 때 행사에 하나님께서 행사하시고, 부족의 테두리를 넘어서는 공동체 의식 12부족동맹은 같은 신앙과 책임가짐으로, 연례축제를 할때 실로에, 공동의 성소에 모이고, , 위급한 상황에서 계약의 하나님 이름으로 일치된 행동을 하여 신속하고도 즉각적인 대책
         
        7. 판관의 역할

      •   사사와 통치자 의미( 드보라, 사무엘은 부족내의 중재자 역할)는 사사로, 이 판관직은 세습적이던 왕조와는 달리 비세습적이었고, 야훼의 영이 내린 사람으로 카리스마적인 지도자이다. 하나님의 카리스마 또는 영적인 능력이 주어지면 부족동맹의 우두머리가 될 자질을 가지고 그 예로 하나님의 사자 기드온,  전설적인 삼손, 드보라등이 이스라엘의 부족들을 소환하여 야훼의 이름으로 가나안인들과 전쟁을 승리로 이끌게 된다. 

      • 8 무기또 전투
        전략적인 가나안 요충지는 이스르엘 계곡인  에집트와 메소포타미아를 잇는 주요 상업도로가 통과하는 지점인데 가나안의 므기또 요새는(요한의 계시록에서 세말에 가서 하르마게돈 전투가 일어날 곳) 가나안인들이 이 상업상의 생명성을 지키고 있는 한 이스라엘의 경제생활은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었음으로 바락은 판관 드보라의 말을 듣고 이스라엘 군대를 끌고 다아낙이라는 요새화된 도시 부근-가나안 장군 시스라와 싸움 드보라의 소집에 부족이 겨우 12지파 중 반밖에 아니모였으나, 무서운 폭풍우가 일어나 이즈르엘 평원으로 흐르는 키손강을 범람시켜 가나안의 병거들이 진흙에 바져 이스라엘인의 승리를 거둔다. 이 승리는 드보라의 노래(사실, 역사적 신빙성, 구약석어에서 가장 오래된 시 중의 하나)는 현장을 목격, 직접 참여한사람이 쓴 작품으로 추정된다.  므기또의 고고학 발굴결과, 이 전쟁과 전쟁을 기념하는 노래가 나온 연대를 기원전 12세기 후반, 아마도 기원전 1125년경인데 이  시는  야훼는 폭풍을 일으켜 시나이에서 에돔지역으로 진군한 분
        백성의 영도자, 백성은 그의 승리, 전능한 행위를 찬양하도록 권고받음.
        야훼께서 백성의 우두머리로 나섰기 때문에 부족들을 선전에 참여하도록 촉구한다. 야훼를 도우려  나오지 않는 부족들- 야훼의 백성으로 행동울 취하지 않았다고 강경한 어조로 비난, 우리는 이스라엘 바탕이 정치적 또는 종족적 유대가 아니라 부족동맹의 유일한 주인인 야훼께 전적으로 헌신하기로 결정한 부족 이스라엘이란 야훼희 친구요 야훼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구약성서에서 이스라엘 찬양의 역사, 드보라 노래보다 더 명확한 것이 없다.
         대규모 전쟁은 끝났으나 그러나 다른 지방에서 분쟁을 걸어옴, 트란스요르다 지방의 신생왕국들이 트란스요르단 지방의 일부와 가나안을 점유한 이스라엘을 시샘-
        기드온- 이스아엘인들은 그들의 침입-위험-여룹바알이라 불리기도 하는 판간 기드온에 의해 구출- 기드온의 군사적 지도력은 여훼께 대한 카리스마적인 열성에서 나왔다. 이러한 열성으로 그는 바알에게 빠진 사람들, 나아가 자기 집안까지 쇄신시켰다.기드온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승리가 그들 스스로의 힘에 의한 것이 아니라 야훼께 주신 것임을 입증
        필리스타인- 기원전 12세기와 11세기의 이스라엘-필리시티인은 에게 해역에서 지중해 동부 연안으로 쏟아져 들어온 해양민족-기원전 1200년 직후 그들은 육로와 해로로 가나안에 들어와 연안평야에 상륙 거점을 마련-타고난 공격성,쇠로써 도구와 무기를 만드는 기술을 익혀 이를 독점판매-이스라엘인과 맞붙음-팔리스티아인은 가나안에 필리스티아 동맹국을 세우러 수있을만큼 강력해지게 되었다. 역사상 큰 아이러니 중의 하나는 이스라엘땅의 이름인 팔레스티나가 이스라엘의 불구대천의 원수였던 필리스타아란 말에서 파생되었다는 점이다.    
          삼손이야기는 추측건데 기원전 11세기초의필리스티아인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읽을수 있는 가치-필리스티아인이 연안지방에서 자기네 위치를 강화시켜 고원지대의 이스라엘인에게 위협을 줄만큼 강해졌다는 사실-대 접전도 없었고 필리스티아인이 세다고 해서 두려워했다는 표현 없음-두 민족의 교역관계를 단절시킬만큼의 큰 사건이 아니라 기껏해야 변방의사소한 분쟁 정도-그러나 기원전 11세기 말엽에 와서는 필리스티아인이 이스라엘의 고원지대로 가는 도로 전체를 장악할만큼 강력- 사태가이렇게 변하자 필리스티아인은 드디어 이스라엘 동맬을 일거에 해체시키려는 전면적은 공격을 취하게 되었다. 

      • 9동맹체제의 쇠퇴
        정치적인 압력이 점증될수록, 이스라엘의 부족동맹체제는 사태에 대처하기에는 무력한 기구- 위기에 봉착하여 드보라의 소집 요구-반밖에 되지않았으나  이스라엘의 12부족은 중앙집권체제에 의해서가 아니라 야훼께 대한 공동의 종교적 윤리적 책임으로 결속되어 있었다.
        부족의 독립성이 강- 야훼만이 이스라엘 민족의 지배자-판관과 성전의 엘리와 같이 중상성소를 관장하던 대사제가 야휘를 대신해서 다스렸다. 삼상 1:-4
        중장성소에서 종교적 축제가 열리거나 기브아인들의 만행과 같은 위급한 상황이 벌어졌을때에라야 하나로 뭉쳐 공동 조처-정치적 조직은 한동안 근동에서 볼 수 있었던 전제군주적인 독재를 막을수 수 있었다
        그리고 정치가 위기가 생길 때 역사의 주인인 야훼께 되돌아가 이스라엘의 특징적인 역사적 신앙을 쇄신시킬수 있는 계기

      • 10 세겜에서의 왕정제도 시도
         여호수아 시대의 부족동맹이 형성되었던 세겜에서 처음으로 중앙집권체제가 수립
         이내 실패하고 말았다. 이 일은 아비멜렉이 주도했지만 그전의 오브라도 이런시도를 했다. 기드온(여룹바알)은 카리스마적인 영도역역을 발휘하여 이스라엘을 황폐하게 만든 유목민들의 침입을 잘 막아냈다. 그가 미디안족을 몰아냈고 게다가 피리스타인의 위협으로 정치적 긴장이 고조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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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울고 싶을 땐

      •                       정명순

      • 새파란 하늘에

      • 고양이 구름 흘러가는날

      • 울고 싶을 땐 울 일이다

    • 눈물의 쉼터에 한자리 차지하고 앉고 싶을 땐

    • 꽃이 피고

    • 맛있는 음식이 가득하고

    • 꿀이 있어도

    • 흰 돛단배 닮은

    • 눈물의 쉼터에 앉으면 그뿐

    눈물의 쉼터에서

    맑은 힘을 길어오면

     

    다시 삶은 맑고 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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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가에서

      •                       조성국

      •                               문창과 졸업생

      •                              새평화교회 담임목사

      •                              목회학 박사

      • 일요일의 늦잠을 깨우는

      • 햇살이 비추는 창가에서

      • 남루한 옷을 입고 길을 떠난 어린시절의 나를 본다

      • 세상으로 가는 순한 물길이 되고 싶었던 나, 그러나 순한 물길을 따라 흐흐지못하고 청춘을 살기도 전에 한참을 늙어 세월이 지나가는 창가에 가만히 서 있었더니

      • 지친얼굴을 비추는 환한 햇살이

      • 손등 위로 또르로,

     

     

     

     

     

     

     

     

     

     

     

     

     

     

     

     

     

     

     

     

     

     

     

     

     

     

     

     

     

     

     

     

     

      • 하나님의 꽃대궐

      •                                                           시조시인 이영지

      • 하늘이 에메랄드

      • 바다도 에메랄드

      • 둘이는

      • 흰 물보라

      • 파아란 흰 돌 보라

    • 널뛰기

    • 빛은 중간 쯤

    • 입술열매

    • 꽃대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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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이버 전도및 선교

    • 이 단어는 헬라어의 규베르네테스에서 비롯되었다. 그 뜻은 조정과 제어의 의미를 지닌다. 조타수(steer man, helmsman) 또는 선장(captain) 항해사(navigator)뜻한다.  플라톤은 규베르네테스를 조종술, 통치술의 의미로 사용했다. 이 단어가 라틴어로 바뀌어 구베르네테스(gubernstes)로 되었다. 이는 넓은 바다를 항해할 때 중요한 구실을 하는 조타 장치과 같은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헬라어의 큐베르네테스라는 단어는 한글 개역성경에서 선장으로 번역되었다. 

    구약성경에는 이 단어가 선장이라는 뜻으로 에스겔 27:7,27,28,29절에 4회 사용되었다. 시돈과 아르왓거민들이 네 사공이 되었음이여 두로야 네 가눙데 박사가 네 선장이 되었도다.(겔 28:8) 네 재물과 상품과 무역한 물건과 네 사공과 선장과 네 배의 틈을 막는 자와 네 장사와 네 가운데 있는 모든 용사와 네 가운데 있는 모든 무리가 네 패망하는 날에 다 바다 중심에 빠질 것임이여(겔 27:27) 선장의부르짖는 소리에 물결이 흔들리리리도다.(겔 27:28) 무릇 노를 잡은 자와 사공과 바다의 선장들이 다 배에 내려 언덕에 서서(겔 27:29)

    신약성경에는 이 단어가 두 곳에 역시 선장이라는 의미로 사도행전 27:11과 요한계시록 18:17절에 사용되었습니다.  백부장이 선장과 선주의(행 27:11) 각 선장과 각처를 다니는 선인들과(요한계시록 18:17)

     

    사이버공간의 성경으로 배우는 우리말 바로하기의 접근은 일차적으로 난무하는 사이버공간을 우선적으로 외면하기보다는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공간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기위해서는 다양한 물리적인 전자 접속으로 기재들을 활용함으로써 들어가야 한다. 그런데 제가 전공하고 있는 그러나 그 보다도 더 중요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예비문학목사로서의  하나님의 사업에 대한 설명은 바로 이 어쩔 수 없는 오늘의 문명사회를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오히려 이 공간을 하나님의 사역장으로 활용한다는 점이다. 문학과 성경과 사이버라는 이 삼각의 융합관계에서는  하이퍼텍스트의 올바른 방향에의 접근이며 오히려 이 삼각구조는 바로 나와 그와 다른이와 공간을 참으로 활용하는 우리의 공간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성경에서 하나님이 제시하고 예언했던 바다에의 공간을 헤엄치기 위해서는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장으로 사용한다는 점이다.  크리스천문학의 방향을 제시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할수 있다. 본래 크리스천문학은 하나님의 사업을 그 전도에 두고 사랑으로 하나되게 되는데 있다. 따라서 이러한 계획을 이루기 위한 문학에의 접근은  이 유행의 첨단이 바로 나와 그와 그리고 제삼자라 어울릴 수 있는 하나님의 사역장이라는 점이다.  각기 다른 개성의 문학을 가지면서도 사이버라는 가상의 공간을 통해 많은 시인들이 참여하고 또 각기의 개성을 존중하면서 예리한 마우스 끝에서 그 따뜻한 사랑의 문구를 끄집어 내어 서로 공동의 하이퍼텍스적 문예작품을 만들어 갈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바로 선장이라는 의미의 사이버공간은 홈페이지를 가진 주인이 바로 선장이고 그 선장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장으로 사용할 권리와 의미와 주인노릇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시인들, 혹은 소설가, 혹은 수필가들이 그들의 영역에서 하나님의 이야기들을 서로가 공동작업을 하고 또 숨겨진 언어의 절제인 작품이 나를 찾는 싱싱한 작업은  보이지 않는 세계인 12차원의 세계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이 작업은 하나님의 사업을 시대적인 유행의 물결에 흡수하여 하이퍼텍스트를 통해 이룩하는 일이다.

    절대자의 모습에 따라 움직이는 과정은 바로 형이상성으로 새롭게 태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다.

     

     

     

     

     

     

     

     

     

    4차원의 공간기호적 시의 이해는 우리 인간이 속해 있는 우주가 거대한 4차원막에 붙어 있기 때문에 그 시적육성으로 12차원의 신비를 다스리는 하나님의 절대세계에 대한 흠모로 보이지않는 제삼자와 같이 호흡을 같이하면서 하나님의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서로 은폐된 사람들이지만 그러나 곧 서로 컴퓨터안에서도 서로 얼굴을 볼 수 있는 공간이 설정된다 하더라도 우선은 떨어진 공간의 거리에서 같이 작업하는 이 작업은  다같이 참여할 수 있는 내면이 같은 문학적 접근에서 하이퍼텍스트성으로 참여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하나님의 무한한 비밀 속에 들어 있는 천기누설을 다름아닌 작가들이 알아보는 공간은 그 옛날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말씀하셨던 복을 받을 것을 예언해준 약속자로서의  축복된 세계이다. 절대세계에의 완전지향을 가진 하나님의 일에 참여하는 기쁨은 그러나 그 기쁨이 많은 의무와  소명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점이다. 

    우선은 언어기호의 공간의 붙잡혀 구속되지만 오히려 절대진리를 사모하는 사람들의 전체 과학자들이 말대로 막에 붙어 있어서 보이지않는 그들만의 심장을 향해 같이 호흡을 하며 하나님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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