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예문학교회(이영지poetclasschurch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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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나비는
운영자 2007.6.29 조회 428

  • 공감대 형성의 낭송법
    -<나비야 청산가자>를 중심으로

                                                                         
      1.  마음의 색채가 깃들여진 음향

     색채가 禮記의 樂記에 音은 사람의 마음(心)에서 생기는 것이라 하였다. 그러기에 음향은 마음에서 울려나오는 소리이고 보면 이 마음은 곧 太極에 해당한다. 특히 시의 聲音에는 太極에 해당하는 理가 있어서 시인의 마음이 투사된다. 그러기에 시의 낭송은 시인의 마음을 눈으로 읽어 가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색채가 깃들여진 음향이다.

       2. 색체음향
     
    (1)나비의 녹색음향

     나비와 인간의 공통점이 있다면 일정한 道를 향하여 비상하고 싶은 욕망과 동시에, 생명력을 가졌다는데 있다.

    白胡蝶汝靑山去 나비야 청산가자
    黑蝶團飛共入山 범나비 너도 가자

     이것은 만물을 낭송음향으로 하는 '上善若水'와 같이 최상의 것은 흐르는 물의 특성으로 시작하는 음향이다. 따라서 정 위치에 중간의 위치가 된다. 물의 특성은 장자의 호접몽(胡蝶夢)에서 제물론에서 물 나비까지 등장하면서 도에 접근하는데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으니 빼앗길 것 하나 없고, 빼앗길 것 없으니 또한 지킬 것 하나 없고, 지킬 것 하나 없으매 조릴 마음 또한 없기 때문에 가진 것 없어도, 걱정이 없고, 옷까지 벗어 던지며 자유로와 지려고 한다. 따라서 청산을 향하여 비상한다.
     
                                      나비야 청산 가자

    땅을 박차며 하늘을 향하여 자유로움을 외치는 입 모양이 된다. 다시 '범나비 너도 가자'고 하고 다시 마음으로 이웃의 친구까지 부르는 '범나비 너도 가자'는 최상의 것을 향하여 가는 자의 평범에서 출발한다. 그러기에 중간의 위치에서 출발한다. 그리고는 상승하는 음향이 된다. '범나비 너도 가자'는 '나비야 청산 가자' 위치에서 수평을 이루는 위치에서 출발한다. 그런데 '범나비 너도 가자'는 다른 나비도 불러들임으로써 그 무리의 수는 엄청날 것이기 때문에 큰 우주의 공간에 있는 완전성을 지향한다. 그 울림은 하늘을 향하여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땅 위에 있는 모든 이웃을 불러모으는 음향이 된다.

     

     나비야 청산 가자 범나비 너도 가자
      
    푸른 산이 문제가 아닌 마음의 청산을 지향하는 사람들이 같이 동참하는 공통음향이 된다. 그러기에 '범나비 너도 가자'고 하는 음향은 '나비야 청산 가자'의 끝의 부분에서 출발하기 시작하여 '가자'의 위치에서는 낮고 넉넉하고 힘이 있는 낭송이 된다.

      (2) 황색 도보 위의 음향

      行行日暮花 宿 가다가 날 저물면 꽃에서나 자고 가자

     연쇄법적 시의 엑스터지 방법을 통하여 절대의 화합세계에 접근하려는 방법은 낮고 낮은 음향의 소리에서 다른 사람과 같이 가야 하기에 땅의 발을 딱 붙이고 하루종일 걸어야하는 길고 긴 여정의 길이 된다. 그러기에
                                           


                                             가다가 날 저물거든 꽃에서 자고 가자


    밤과 낮의 시간적 지속성이 절대의 세계를 향하고 목표를 정한 나비와 범나비들에겐 밤의 시간에서조차 방이나, 굴속에 들어가 잘 여유가 없다. 그것은 땅 속이나 집이라는 시조어가 없음으로서 당연히 땅 위의 공간이 된다. 그리고 꽃이 비록 지상 위에 있다 할지라도 꽃의 개념은 음향의 옥타브를 올리지 않는다. 꽃이 아닌 다른 의미자질과 별로 등가관계가 되지 않는다. 따라서 옷은 간편하고, 마음가짐은 단단히 무장되어서 마치 전투에 나간 용사처럼 저력있고 탄탄한 음성으로 명령에 복종하는 동참대열의 음향만이 존재할 뿐이다. 땅을 걸어가는 대열의 행진음향만이 있을 뿐이다.

    (3) 나비의 흰 음향

    그런데 가는 길에 문제가 생긴다.

    花薄情時蝶宿還 꽃에서 박대하거든 잎에서나 자고 가자

     꽃이 박대한다. 이 박대는 꽃의 미움의 대상인 나비이다.

     

     주정꾼 남편과 사는 얌전한 여인이 있는데 날마다 술타령에다 못살게 구는 시달림을 받는다.
    "저도 이젠 버틸 없는데요. 주막의 설매를 들여 앉히시구려"
    목멘  아내가 들릴락 말락한 음성으로 이야기하자 남편은 반웃음이 섞인 음성으로
    "핫, 아주 잘 됐다. 그냥이야 내 쫓을 수 있나. 무슨 징표라도 나뉘어 주어야지 "
    "옛다, 이제 내 징표나 갖고 나가서 이 내 옷 조각을 보이고
    나는 소박녀 올시다. 하고 말해! 알겠지"
    아내는 남편이 찢어준 세모꼴의 옷 조각 하나, 마치 나비모양을 한 옷조각을 들고 정말로 나비가 되어 간다.


     한국 나비의 전형적인 설화이다.  꽃과 나비는 부부이고 본부인은 남편으로부터 질시를 받는 예가 허다히 예시되는 데 대한 설화이다. 본래의 것, 그것은 마치 예수가 사람들로부터 십자가에 달리며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하듯이…. 시인이 진창으로 침몰하여 내는 소리는 절망의 음향으로 낭송된다.

      꽃에서 박대하거든
                                     

    완전히 죽음에 이르는 찰라처럼 절규의 음향이 돌출되는 순간이다. 천지가 하얗게 변하는 절규의 음향이다. 땅으로 낙화한 나비가 되어 흰 천 조각을 쥐고 나비가 된 소박녀, 퇴자맞은 여인, 옷을 찢어 준 표를 받은 여인은 친정으로 돌아 갈  수는 없다. 언덕배기 고개위, 성황당 나무밑에 쭈구리고 앉아 있으면 홀아비나 가난한 총각이 보쌈하여 가게 된다. 아니 절대의 세계를 추구하는 자의 길은 앞의 방해 때문에 그가 목표로 하는 꿈을 버릴 수는 없다.
    옛날에 한 아가씨가 흰 가마를 타고 시집을 간다. 흰 가마는 신랑이 죽고 없을 때 타는 가마다. 새 처녀가 그것도 무덤에 들어 가 있는 신랑을 위하여  할 수 있는 일은 그의 무덤 앞에서 통곡하는 일이다. 그런데 밤 중 가까이 무덤이 열리면서 시집온 이 새댁이 딸려 들어간다. 친정집 하인이 얼른 그녀의 옷을 붙잡자 찢어지면서 하얀 조각이 되었고 이 조각은 무덤을 늘 맴도는 흰 나비다.

     한국의 나비에 관한 이야기로 죽음에서 건져진 생화과정이다. 살아 남은 자의 상징은 하얀 빛으로 날은다. 잎에서 하얀 나비가 자고 가는 삶은 삶을 접붙이는 순간이다. 그리고 다시 청산을 향하여 무리지어 움직이는 순간이다. 이미 세상에 연연하지 않고 영원히 변하지 않을 청산의 푯대를 향하여 있기에 다시 힘이 솟고 마음이 넓어진 자의 청청 울리는 음향이다. 절망의 끝에서 건져올린 음향은 처음보다 백배의 음향으로 울리며 하늘에 소고를 올린다. 만약에 시조의 끝부분을 내려 낭송한다면 체념의 의미자질로 변이되기 때문에 본 화합을 위한 낭송에서는 허락되지 않는 부분이다


                    잎에서나 자고 가자

    3. <나비의 청산가자>의 낭송음향

    따라서 인류의 화합을 위한 시 낭송을 통한 정서적 공감대는 <나비야 청산가자>에서 특이하게 하늘을 향하여, 혹은 세상을 향하여 울리는 음향의 낭송이 된다.    
     

    하향 색채시어의 응집성


    1. 하향색채 시어의 응집성

     인간 삶에서의 극적인 절망과 고통은 시를 통해 그 절망과 고통이 희망조차 보이지 않는 까마득한 나락으로 떨어 질 수 있다.  그러나 시의 텍스트다움에서 접근할 때는 이 절망과 고통이 어디까지 내려가는가 하는 것을 문제로 제기해 볼 수 있다.  
     시가 시인의 심상영상에 의하여 극도의 분리개념에 있는 것은 시의 하향성이 된다. 이 하향성은 시조에 있어서는 중장에 해당한다. 그런데 이 하향지수는 시조의 경우 중장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종장에 있으므로서 그 절망과 고통의 검은 영상에서 벗어난다는 가능성이 탐색되어 진다.  절망과 고통은 인간이 살아 있으면서 갖는 죽음의식이며 이 죽음의식이지만 이 삶과 죽음의 분리개념은 시를 통해 현실과는 다른 꿈이 투영되는 시의 텍스트를 통해  유사한 기호들을 의도적으로 모으는 의음(擬音) L'onomatopee에 의해 자기가 지시하고 싶은 대상과는 달리 발생한 현실의 검은 색채 영상을 시 텍스트에서 악마의 거부 이미지 응집력으로 하여 임의의 문장연쇄를 시텍스트답게 만들어 가는 시텍스트다움의 응집력이 있게 된다. 
      본질적으로 하향성은 진행형 의미개념에 의하여 그 한계성이 노출됨을 암시한다. 이것은 하향이라는 의미개념에서 오는 시의 서정성이 그 색채감각에서 시인과 유기적인 기능에 대한 아날로지로서 그 절망의 끝에서 한줌 끌어 올려짐을 암시하고 검은 색채 이미지의 하향성,  곧 이상시가의 경우 하향 색채 시어는 꿈의 근원적 영역으로 소급하려는 의지에서 출발한다고 가정해 본다. 이 의지는 우울 즉 시인의 고뇌의 상징인 보라 색채에 비유될 수 있다. 이 역설성은 낭만주의 심리학자 슈베르르가 지적한 밤의 휴식이 죽음의식에 머무르며 마치 지상의 생물이 어머니의 품안으로 돌아가려는 것고 같은 인간이 초자연적인 합치에 달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성경에서 죽음을 잔다고 하였고, 예수의 무덤에서 주검이 발견되지 않음으로써 죽음과 주검의 구분이 뚜렷이 되는 삶에의 휴식 색채이다. 죽음의식인 보라 우울의 색채는 시를 통해 주검을 삶으로 바꾸는 색을 땅 속 깊이에서 땅 속의 색인 황색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이 황색은 구체적으로는 태양색채이며 지상에서는 땅 색이 된다. 이처럼 하양성의 극치에서 일어서는 시적텍스트다움의 보편성은 현실의 주검을 인간이 시를 통해 위대한 삶으로 바꾸는 데 있다.

      2. 하향 색채 시어의 사슬

      1). 이상 시에서의 하향 색채 무늬 사슬

      이상 시는 하향의 인간시어 색채사슬무늬에 사체, 망령, 악령, 망해, 까마귀, 카인, 절름발이, 이마, 손자국, 아버지, 나비, 만월, 진흙 밭 등을 응결성으로 한다. 이러한 응결시어의 명명적 사슬의 꿈은 이상시인의 심리적 죽음의식의 극단의 하향시어인 사체, 악령, 망해, 까마귀, 카인 등의 죽음의식이 그의 실제 생활인 밤으로서의 시대적 누적과정의 긴 길이에서 생성된 것이지만 이 주검의 시체 상징을 벗어나고자 보라색 우울 상징 기호인 절름발이, 이마, 손자국의 시어를 택하여 인간의 삶 색인 색채로바꾸기에 시적텍스트다움을 기대하게 된다. 이 시어의 특징은 거의 죽어 가는 고통언어이지만 이 고통은 황색 사슬색채시어의 자생성인 아버지, 나비, 만월, 진흙 밭의 시어로 인하여 삶으로의 길을 모색을 기대하게 된다. 이러한 통사 문맥에 의한 이상시의 하향시적 텍스트다움은 악마적 주검의 현실성의 검은 색채상징을 시적 죽음의식의 유기체적 하향성의 텍스트다움의 계속요소로 바꿈에 있다.

      (1)  죽음의식에서 벗어나기

      ①  관통의 벽면에 설비된 조금밖에 안 되는 여백을 이용해서 그는 사체가 되어 가지고 운명의            미분된 차를 운산하고 있었다.
          해답은 어디까지나 그의 기독교적 순사의 공로를 주장하였다. 그는 비로소 묘지의 지위를 정          의하였다.
        -<얼마 안 되는 辨解>

     ②  인간 70 아니 24년 동안이나 뻔뻔히 달아온 사람 (나) 나는 그날 나의 자서전에 자필로 부         고를 삽입하였다. 이후 나의 육신은 그런 고향에는 있지 않았다. 나는 다신 나의 시가 차압         당하는 꼴을 목도하기는 차마 어려웠기 때문에
    -<1933. 6. 1>    

    위의 시에서 보이는 명시적 주검에의 탈출은 무덤과 죽음의식과의 차이로 구분할 수 있다. ①에서 '사체-운산-기독교적순사의 공로-비로소 묘지의 지위정의'의 명명적 사슬무늬시어로 인하여 시텍스트다움이 된다. 즉 '사체'가 되어 가지고서도 관 속에서 계속 운명의 미분된 보라색의 우울한 인간적 고뇌인 '운명의 미분된 차를 운산'하고 있는 고차원의 시텍스트다움을 보게 된다.  따라서 드디어 설의법에  의하여 '묘지'라는 주검의 장소에도 불구하고 땅 색 즉 황색의 명분에 의하여 그 명분은 '기독교적 순사의 공로'라는 하얀색의 응집성을 넣어 삶으로의 전환을 가짐으로써 시적텍스트다움으로 판정된다. ②에서도 보편적인 인간 70의 나이에 상반된 24살이 죽어야 하는 현실의 시적 하향성인 '자필의 부고를 삽입하였다'고 하면서도 이 부고에서 벗어나고자  '그 이후 나의 육신은' 주검의 곳인 '그런 고향에는 있지 않았다'라고 하여 관속의 주검과 관 밖의 주검, 즉 관 밖의 세상인 황토인 흙에 있음을 암시한다. 이 삶으로의 전환은 그의 시가 차압되지 않는' 다신 나의 시가 차압당하는 꼴을 목도하기는 차마 어려운 시'를 시적 응집성으로 만드는 작업을 한다. 이것은 곧 죽음의식, 즉 삶을 향한 안간힘, 우울의 긴장관계에서 그 긴장관계가 해소되는 삶의 황색, 즉 땅색, 살색을 지닌 나로 하여 묘지밖에서의 삶을 암시해준다. 이러한 이 하향의식의 시적 텍스트의 응집성은 마지막 밑바탕에서 건져올려지는 것이며 시인의 삶이 시를 차압당하기를 싫어하는 내면의 소리로 인하여 이상시는 시적 텍스트다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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