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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영자 2007.6.29 조회 310

기독교적 관점에서 본 李箱詩 [烏瞰圖]의 詩 第一號의 리듬 연구
李 英 芝*

  • Ⅰ 이상시의 시제1호의 문제 제기
    본 李箱詩의 [烏瞰圖]의 詩 第一號 연구는 졸저 {이상시 연구}에서 부분적으로 논의되었던 각 시제호마다의 특징을 좀더 깊이 다루고자함의 한 일환이다. 이에 詩 第一號를 본 논의의 대상으로 삼고 삶의 생태생성을 살핌에 기독교적 관점안에서의 리듬으로 연구하고자 함에 있다. 여기에서 리듬은 반복의 개념으로 한정된다.
    이상시에 대한 기독교적 관점으로 보는 시각은 이상시 [肉親]에서 비롯된다.
     
    크리스트에혹사한남루한사나이가있으니이이는그의종생과손명까지도나에게떠맡기려는사나운마음씨다. 내시각에늘어서한시대나눌변인트집으로나를위협한다. 은애-나의착실한경영이늘새파랗게질린다. 나는이육중한크리스트의별신을암살하지않고는내문벌과내음모를암살당할까참걱정이다. 그러나내신속한도망이그끈적끈적한착각을잊어버릴수가없다
    - [肉親]

  • 관통의벽면에설비된조금밖에안되는여백을이용해서그는사체가되어가지고운명의미분된차를운산하고있었다
    해답은어디까지나그의기독교적순사의공로를주장하였다. 그는비로소묘지의지위를정의하였다.
    - [얼마안되는변해]

  • 이상은 그리스트에 대해 깊은 관심을 반복 리듬으로 하고 있고 그의 시에서 그의 삶과 그의 죽음문제까지도 시를 통해 "크리스트"와 "기독교적순사"에 입각한 리듬을 보여준다. 이러한 이유로 하여 이번 이 연구는 이상시가 가지는 그의 개인시라는 보편성을 가짐에도 불구하고 오감도 시제1호는 "十三人의兒孩가道路로疾走하오."의 대 전제를 조건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당시의 공동적 삶에 따른 리듬의 문제가 좀더 공의롭고 광의성을 띄는 시적 외연리듬으로 하고 있게 된다.  이에 시의 내포를 중심한 기독교적 관점으로서의 리듬으로 조명하고자 한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烏瞰圖]의 詩 第一號가 개인의 시적 정서리듬보다는 공동의 삶이 살아남기 위한 시의 리듬이라는 관점에 근거하여 인간의 존재를 절대자와 관련시켜야하는 반복리듬의 고찰로 그 범위를  한정하고자 한다.
    Ⅱ 열두제자와 예수님
    1. 열두제자와 예수님이 함께한 13인 
    李箱 詩 [烏瞰圖] 詩 第一號는 兒孩들의 시이다.

  • 十三人의兒孩가 道路로 疾走하오.
    (길은막다른골목이適當하오.)

  • 第一의兒孩가무섭다고그리오.
    第二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第三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第四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第五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第六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第七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第八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第九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第十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 第十人의兒孩가무섭다고그리오.
    第十二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第十三의兒孩도무서운兒孩와무서워하는兒孩와그렇게뿐이모였소.
    (다른 事情은없는것이차라리나았소.)

  • 그中에一人의兒孩가무서운兒孩라도좋소.
    그中에二人의兒孩가무서운兒孩라도좋소.
    그中에二人의兒孩가무서워하는兒孩라도좋소.
    그中에一人의兒孩가무서워하는兒孩라도좋소.

  • (길은뚫린골목이適當하오.)
    十三人의兒孩가徒路로疾走하지아니하여도좋소.
    - 李箱 [烏瞰圖] 詩 第一號
     
    이상시의 兒孩는 보편적개념으로 본 아이의 시적 동의어이다. 따라서 이 兒孩를 통해 이 시를 풀수 있는 길이 있게 된다. 예수님은 하나님께 감사하기를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라고 기도하고 있기 때문에 기독교와 이상시의 연계성도 가능하게 된다. 시제1호 첫연은  13인의 兒孩가 모여 있고 이 兒孩는 시제 1호 전체에서 나오는 兒孩이다. 그리고 이 13인이 막다른 골목이 있는 곳까지 반복의 리듬으로 달리고 있다. 이 반복은 13인 전체가 결코 죽음을 향한 길이 아니라 질주하는 삶의 주파수들의 리듬으로 살아있는 자들의 리듬이라는 가설로 출발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길은 막다른 골목이라는 텍스트언어로 인하여 삶과 죽음이 존재하는 현실이고 이 현실 앞에서는 대신 돌아가신 예수님이라는 명제가 붙어 12제자와 예수님이 함께 한 13인이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을 모색한다는 시적 기독교의 관점에 서게 된다.

  • 十三人의兒孩가 道路로 疾走하오.
    (길은막다른골목이適當하오.)

  • 시제1호의 첫 연의 "十三人의兒孩가道路로疾走하오."는 괄호로 처진 제한적 조건을 -"(길은막다른골목이適當하오)"-로 내세움으로써 13인이 되는데 이 兒孩들은 예수님과 그를 따르는 12제자라는 리듬에서 시작점을 갖는다. 이 시제 1호의 예수를 포함한 12제자의 삶으로 가는 긴박한 공동체적 삶이 내재된 급박한 리듬은 그들의 몸 속에 살아있는 생명의 근원자가 살아 있음을 내세우는 것이기에 질주하고 있다. 이 생명의 문제가 나변의 이유로 등장하는 동인은 다름아닌 전능자를 소망하는 사역이 되는 것이며 따라서 질주문제까지도 리듬으로 해결하는 시적 답이 있게 된다.
    이러한 논리적 유추의 가능성은 이미 이상의 시가 기독교 정신안에서 일제에 항거하는 시적 은유의 항일리듬을 썼다는 것을 밝힌바 있고 또 시제1호를 통해서 그 홀로가 아니라 예수님이 평소 즐겨 사용하셨던 "인자", 사람의 아들로 오셔서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갔다는 점이다. 이 더불음의 삶은 그의 12 제자가 그들의 역할을 담당하도록 그들을 이끌어 가는 예수님과 더불어 13인이 삶의 문제를 긴박하게 아주 바람직하게 해결함을 시의 내포성으로 하였기 때문이다. 이 질주자들을 시대적 당시의 시안으로 본다면 이상은 그의 시의 리듬의 단계를 도로로 질주하는 상황을 만들어 독립운동이라는 거대한 가치로 현현시키고 있다. 시대에 대한 사명감으로 이상은 시대적 존재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자신의 시를 차압당하지않기 위하여 그의 시의 위치를 곤고히 하고 있다.
     
    인간 70 아니 24년동안이나 뻔뻔히 살아온 사람(나)는 나의 자서전에 자필의 부고를 삽입하였다. 이후 나의 육신은 그런 고향에는 있지 않았다. 나는 자신 나의 시가 차압당하는 꼴을 목도하기는 차마 어려웠기 때문이다.
    -  [1933.6.1]에서
     
    이상은 그의 시 [1933.6.1]에서 시가 차압당하지않게 하기 위하여 예수님이 이끄는 길에 서 있다. 예수님을 포함한 13인이 나란하게 줄을 지어 삶의 리듬의 계단을 오르고 있다. 이러한 시적 유추는 그의 존재는 당시의 정황으로서 그가 살아온 24살의 고향에 있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다. 그의 각오는 죽음으로 삶을 이어갔던 순사적 입장이었고, 육적인 24살의 삶이 아니라 보다 차원높은 시제1호와 같은 영원의 삶을 향한 길에 서 있기 때문이다. 영원에의 길은 예수님과 더불어서만 가능하고 이 가능성은 12제자와 에수님이 함께함으로서만  죽음이 아닌 삶으로 가는 길이다. 한국인으로서의 이 길은 인자이신 예수님과 함께 살아가는 길이다.
    2. 10명의 한 덩어리
    시제1호의 2연에서 한 덩어리는 10명으로 뭉쳐진 兒孩들이다. 10명의 兒孩들이 한 사람씩 서로 다르게 그러나 한 곳을 향하여 그들의 리듬의 계단을 오르면서 그들의 일을 담당하고 있다.

  • 第一의兒孩가무섭다고그리오.
    第二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第三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第四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第五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第六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第七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第八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第九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第十의兒孩도무섭다고그리오.

  • 시제 1호의 2연은 兒孩 10명중 "第一의兒孩가무섭다고그리오."로 첫 리듬을 시작한다. 이 첫 리듬은 '하나'의 뜻이 있고 '통일'과 '오직'의 뜻을 가지고 있으며 단일의, '날카로운, 사납다'의 의미를 더 가지어 시적 내포가 결코 무서워 떠는 兒孩의 이미지가 아니게 된다. 이 1이라는 수리는 한 덩어리의 의미로 사랑을 나누어 주기를 희망하는 '형재애'의 개념도 부각시킨다. 예수님의 의미가 되는 이 리듬은 인자로서의 모습으로 보이신 시적 외연이 된다. 이 兒孩의 리듬은 10/1로서 시작한다. "무섭다고그리오"의 모습으로 그 인성을 충분히 보이신다. 그의 삶의 첫 모습이 가장 낮은 자리에서 출발하여 제자들로 하여금 뒤 따를 것을 종용하셨기때문이다. 따라서 이어 제 2의 리듬이  있게 된다. 10명중 두 번째의 兒孩도 10/2의 리듬자리에 있게 하고 있다. 같이 더불어 먹고 마시면서 공생애를 보내신 예수님의 삶은 그의 제자들로 하여금 그와 똑 같이 같은 자리가 아닌 둘째 자리 즉 따라오는 리듬이 되는 "무섭다고그리오"의 兒孩의 리듬을 그의 제자들에게 갖게 하신다. 따라서 뒤 따르는 세 번째 10/3과 네 번째 10/4와 다섯 번째 10/5와 그리고 10/6, 10/7, 10/8, 10/9, 1010의 兒孩들이 저들의 자리에서 저들의 역할을 담당하는 길에 서게 하신다. 이 분량은 서로 다른 자리의 리듬으로 그 자리매김을 가지는데 있으며 이 "무섭다고그리오"의 兒孩리듬은  연속적으로 모이면서 한 덩어리의 힘이 되어진다. 이 兒孩리듬은 10/10리듬이 되어 온전한 하나가 되는 통일의 자리리듬이다.
    10명에 대한 리듬은 이 10이 히브리어    로 "부하다"의 의미가 존재함에 따라 시제 1호의 그 설명이 가능하게 된다. 바로 부유함이 되는 전부 합쳐진 숫자의 의미를 내포한다. 따라서 시제 1호의 외연은 "무섭다고그리오"의 한 단계씩의 리듬이지만 리듬으로 계속 뛰어오름으로써 시의 내포는 이와 대립성을 지니는 고차원적 리듬으로 전부를 합친 즉 아무도 그 위력을 감당할 수 없는 큰 힘이 된다. 이 통일의 리듬은 하나님의 뜻으로 움직이는 신성의 리듬으로 반전하게 된다. 무섭고 공포에 떠는 兒孩들이 아닌, 리듬타기는 "무섭다고그리오"의 리듬이 해소되어지고 있게 한다. 10명의 모임인 兒孩들이 모여 만들고 있는 이 리듬은 여럿이 모여 서로 위로하는 한 마음의 한 덩어리리듬이다. 하나하나씩 모여서 된 이 리듬들의 합은 새로운 뭉침의 兒孩들의 리듬이다. 무서워떠는 리듬이 아닌 재잘재잘되는 아해들의 새로운 리듬이다. 따라서 새로운 힘으로 일어설 수 있다는 미래의 리듬을 예견하게 된다.
    그들이 희망하는 리듬은 다름아닌 막다른 골목의 상황아래서도 삶을 향하여 나아갈 수 있는 자신감의 리듬이다. 이 점은 인간은 누구나 죽음을 향하여 가지 않기를 바란다는 진리의 보편성리듬이고 보면  극도의 어려움 앞에서는 누구나 구원의 신을 찾는 공명의 파동리듬에 있게 한다. 여기에서 힘이 솟아나는 이유는 같은 주파수와 같은 간격과 같은 움직임과 같은 노래를 부르는 긴박감에 예수님이 함께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삶을 향하여 가고자 하는 사람들의 현재 막다른 골목은 바로 삶을 생성해 달려가는 장소의 리듬이 된다. 질주는 전진의 의미가 있다. 따라서 시제1호는 결코 죽음을 향해 전진하는 무리의 발자국 리듬이 아니다. 만약 죽음을 향한 무리라면 막다른 골목까지 갈 필요가 없는 낙오의 리듬이 되기 때문이다. 뒤에 언급할 낙오의 리듬이 있게 있는데 우선 지금 이 처음부터 동일하게 반복되는 이 리듬은 질주의 리듬이다. "그중의第一의兒孩"부터 "그중의十의兒孩"의 리듬들이다. 목마르고 매마른 땅에서 일어서려고 모인        (마콤 에하드) 믿음의 리듬이다. "무서워하는아해"인 시의 외연리듬은 시만이 가질 수 있는 시적 생성생태상황의 열린 시적은유의 리듬이다. 따라서 이 시적은유의 리듬은 오늘날의 현실성으로는 기술문명, 유전공학, 난치병, 금수강산의 심각한 오염, 환경파괴, 화학물질의 남용등에 대한 생명체가 공존공영해야 할 대지의 황폐화에 '무섭다고그리오'일 수 밖에 없는 현실성에서 결코 머물면서 죽을 수 없기에 일어서는 리듬이다. 무서운 兒孩들이 되는 길에 선 한 덩어리 한마음의 리듬은 한 곳을 향한 긍정적이고 바람직한 모습으로 가는 단체의 리듬이다.
    이 10명의 兒孩리듬은 10명이 모이면 교회가 새로 설 수 있는 성도의 숫자리듬이다. 히브리적 개념으로서의 숫자 10명은 성원의 수리어서 이 10명이 모이어야 교회와 새벽기도의 모임 등의 단체수 성원이 되는 리듬이다. 10명이 있어야만 성원이 되는 기독교적 유래의 이 무리수리듬은 바로 10명이 막다른 골목을 바라보는 리듬이 된다. 이 시는 이미 한 명이 당하는 막다른 골목리듬이 아니다. 시제1호는 정적 리듬이 아니다. 시제 1호는 동적 리듬이다. 이 움직이는 리듬은 그들이 방향을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분명하게 제시한다. 그들이 바라보는 리듬은 동적이며 한 덩어리가 되어 그들의 역할을 담당하려고 팔짝팔짝 뛰는 兒孩다운 동적인 리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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